교육칼럼

학교 불신

길전 2008. 1. 1. 11:51
학교 불신부터 없애야
시론-김청규 전 인천부마초등학교장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하더니 정해년 새해를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월 하순에 접어들었다. 각급 학교마다 신입생 예비소집에 이어 졸업식으로 학교는 모처럼 활기차다.
벌써 봄 방학에 들어갔다. 교사들은 말이 학년말 휴가이지 이 기간은 학교에 있어 가장 분주하고 어수선한 때이다. 교육청 인사발령에 따라 교원들의 인사교류가 이뤄지고 신학년도 학교 교육계획 입안과 더불어 학년·학급담임 배정 및 교무분장 조직, 학년 교육과정 운영계획 수립 등 신학년도 준비로 관리직과 부장교사들은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3월달이 지나야 학교는 겨우 자리를 잡고 안착된다. 주말에 교감시절 동고동락했던 선배 선생님 댁 혼례가 있어 8월 말 정년퇴임 후 모처럼 현직에 근무하는 낯익은 얼굴들을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 신수가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입에 발리는 말인 줄 알지만 그렇다고 듣기 싫은 말은 아니다.
허긴 교직의 꽃이라 불리는 교장이 되어서도 학교가 걱정이 되어 누구보다도 먼저 출근하여 교내외를 한 바퀴 돌아보고, 일과 중에 신문 한 줄 제대로 읽을 틈이 없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틀에서 벗어나 만사가 자유로운 자연인이 되었으니 신수가 더 좋아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요즘 '나이를 먹어 유복하게 지내려면 꿈, 그리고 뭔가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어느 식자(識者)의 말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필자의 속마음을 어느 누가 알아줄까?
마땅한 소일거리를 찾지 못한 필자는 아침에 배달되는 지방지와 중앙지를 꼼꼼히 읽는 것이 요즘 일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신문 섹션면까지 깡그리 정독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또 필자가 몸담았던 교육계 동정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는 팔불출 같은 생각도 해본다.
며칠 전 본보 사회면에 '학교예산 남용 제동'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내용인 즉 모 교직단체 회원인 교사가 학교의 운영실태 파악을 위해 관련 법률에 근거해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해당학교가 열람만 허용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하자 인천지법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는데, 결국 승소 판결로 결말이 났으며 앞으로는 학교장이 학교예산을 남용하지 않도록 감시망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는 요지의 기사다.
학교예산은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받은 즉시 교직원 및 모든 학부모들에게 소상하게 공지토록 되어있음에도 어찌하여 이 학교에서는 이런 사단이 생겼는지 납득이 되질 않는다. 어느 조직사회건 그 조직이 바르게 굴러가려면 뭐니뭐니 해도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인적자원들 상호간에 믿음, 즉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 있다.
어떤 집단보다도 신뢰가 존중받아야 할 교직사회, 그것도 국가의 미래 동량을 키우는 배움의 전당 학교현장에서 불신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교육자적 양식과 품성을 잃은 이전투구의 부끄러운 모습을 더이상 보여주지 말 것을 간절히 기원한다. 필자 역시 40여년 교직에 몸담으면서 보람찬 기분좋은 일도 있었지만 이보단 어렵고 힘들었던 일, 아니 솔직히 말해서 반추하기조차 싫은 기억들도 있다. 그리고 교사 시절보다는 교감, 교감 보단 교장이 되어서 더 많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특히 '좋은 학교'를 만들어 보려고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일단 몇몇 구성원들로부터 석연치 않은 불신의 시선을 감수해야만 했다.
'其身이 正이면 不令而行하고, 其身이 不正이면 雖令不從이니라.' (내가 바르면 명하지 않아도 따르고, 내가 바르지 못하면 명해도 따르지 않는다). 이 글은 필자가 교내장학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부터 좌우명으로 삼은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느 조직 또는 집단이든 잡음 없이 원만하게 조직을 이끌어 나가려면 CEO는 첫째, 사심을 두지 않고 둘째, 금전에 연연하지 않으며 셋째, 원칙을 존중하면서 본을 보일 때 시간은 좀 지체되지만 구성원 모두가 집단지(集團知)로 뭉치고 발휘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마련이다.
우선 학교의 리더 위치에 있는 관리자(교장)부터 학교 현장에서 불신을 털어내는 일에 앞장서기를 기대해 본다./김청규 전 인천부마초등학교장
종이신문정보 : 20070221일자 1판 5면 게재  인터넷출고시간 : 2007-02-20 오후 9:4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