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장학의 중핵인 교감, 그리고 교직의 꽃이라 불리는 교장이 되어서는 오히려 잠 못이르며 밤을 지샌 날이 더 많지 않았나 싶다. 물론 필자를 비롯한 60대 이후의 은퇴자들이 걸어온 나날들이 8·15 해방기에 태어나 '근대화'와 '민주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는 어려운 사회적 배경을 짊어졌기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업'이라고 치부한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국민소득 2만불, 수출 3천억불을 바라보는 근자에도 동네북처럼 계속 휘둘리는 교육계의 모습을 보노라면 안쓰럽다 못해 짜증이 난다. 며칠 전 학교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학부모 단체에서 "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비롯한 각 시·도 교육감을 검찰에 고발한다"는 기사가 실린 모 신문을 접했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대다수 학부모들은 꼬투리만 생기면 시도 때도 없이 정규시간 중에 아이들을 버리고 거리 시위에 나서는 일부 극소수 선생님들이 보기 싫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교육현장에 어떤 사단이 생길 적마다 우선 보호받아야 할 수요자(학생)보다 교육 공급자들을 감싸는 교육수장들의 행태가 이제는 신물이 나고 넌덜머리가 나는 것은 아닌가?
사실 학교에 40여성상 몸담았던 필자도 교내 장학 위치에 오르면서 주요 교육이슈가 터질 적마다 겪은 곤혹스러움이 적지 않다. 한 가지 예로 'NEIS 연가 투쟁'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학교장이 소신과 의지를 갖고 반대하는 교사들을 설득해 NEIS작업을 적극 추진하라고 다그치더니만, 모 교직단체에서 워낙 강하게 나오자 갑자기 꼬리를 내리는 바람에 학교 관리자들만 우습게 되어버렸고 한동안 학년말 성적관리가 혼란스러워 대입시를 목전에 둔 일선학교 고3 담임들이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어느 조직이던 간에 CEO가 권위 또는 체모를 잃게 되면 그 조직은 이미 존재가치를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근자에 사회 곳곳이 발전은 커녕 오히려 침체되고 소리만 요란한 것도 국가 경영을 책임진 고위 지도자들이 말만 앞세우고 정말 해야할 일을 소홀히 하며 눈치만 보는데서 파생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필자는 몇 해 전에 세계인들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손꼽고 있는 캐나다 문화 탐방을 한 적이 있었다.
첫 날 밴쿠버 공항을 나서면서 마치 '세계 인종시장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잠시 빠졌다. 캐나다는 본래 인디언과 소수의 에스키모인들의 고장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럽인 그리고 동양계와 아프리카인 등이 모여 사는 다인종 사회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그런데 필자를 더 놀랍게 한 것은 이처럼 핏줄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캐나다가 오히려 한국보다 범죄가 적다는 사실이다. 그 까닭은 실내 금연, 공공장소에서의 금주, 거리 불법시위 등 경범죄에 해당되는 법과 규율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현지 가이드를 통해서 알았다.
'국가의 백년지대계'라는 국운을 책임진 교육수장도 이제는 정말 당당한 면모를 교육 수요자, 아니 공급자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요즘 재계가 법무장관에게 부쩍 연정을 느낀다는 데스크칼럼을 읽었다. 프로필로 보아서는 재계가 특별히 좋아할 이유는 없지만, 그는 장관에 취임한 이후 입만 열면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을 조성하겠노라"면서 이례적으로 전경련 행사에도 참석하고 또한 불법시위나 노사분규에는 "불법에는 불이익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겠다"며 강력히 대처할 것임을 예고했다고 한다. 귀추가 자못 주목된다.
떼만 쓰는 철부지 아이의 응석만 받아주면 아이의 버릇만 나빠진다. 종당에는 버릇없는 아이로 만든 부모도 후회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본다. 방법은 간단하다. 원칙을 존중하고 令(명)을 바로 세우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현장은 계속 '가지 많은 나무처럼,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이다./김청규 前 인천부마초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