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트리플 교육가치

길전 2008. 7. 1. 22:44

 


 

 

 
트리플(Triple) 교육 가치
이論저論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새 정부 교육정책에 '미친 교육'이라 쓴 본보의 오피니언칼럼을 접하면서 지난 40여 성상 국가가 요구하는 인재육성에 나름대로 헌신해 온 당사자로서 회한과 더불어 자괴감이 든다. 국민소득 70불도 안 되는 세계 최빈국에서 오늘날 세계 12위권의 경제력을 지닌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근본 동인도 따지고 보면 미국에서 받아들인 서구식 교육의 힘으로 이만큼 성장한 것이 아니던가.

'이 세상에 최고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는 말은 필자가 자주 인용하는 글귀 중에 하나이다. 인생사 모든 것이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긍정인 것이 있으면 반대로 부정적인 요소도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교육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데는 할 말을 잃는다. 교육자는 '가르치는' 기술 이전에 투철한 교육관과 더불어 사표(師表)로서 갖춰야 할 기본 품성이 있다. 정부에서 하는 일이 혹여 자기 의사에 반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토록 거칠게 항변할 수 있다는 자체가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증좌이긴 하지만, 국론이 이처럼 갈가리 찢기다간 혹여 '한국호가 산으로 오를까' 걱정되어 하는 말이다.

모난 돌, 정 맞을 것 뻔히 알면서 차제에 가슴에 담아있는 회한 풀지 않으면 병 될 것 같아 은퇴한 노교육자의 소회를 풀어놓고자 한다.

첫째, 교육의 최고 가치는 누가 뭐라고 해도 '변화'이다. 교육에 대한 정의는 학자들의 주견이나 교육철학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표현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육에 대한 어떤 정의든 간에 '변화'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사회는 흔히 식자층을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 짓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근자에는 이같은 분류가 통하지 않는다. 최근 빚어지고 있는 사회이슈나 양태를 보면,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정말 머리가 혼란스럽다. 새 가치를 존중하고 창출에 앞장서야 할 이른바 진보성향의 교육자들이 동구권 국가마저 오래전에 폐기한 이른바 '평등교육' 지키기에 더 야단들이다.

둘째, 교육은 미래를 위한 준비과정이다. 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성장한 것도 알고 보면 험난한 시절을 살았던 아버지 세대들이 자식세대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어야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녀 교육에 투자한 결과이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의 국가발전의 모태를 죄다 부정하고 학생들의 인권과 행복권을 찾아주기 위해서 4·15교육 자율화 조치를 결코 수용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일부 좌경 성향의 그들은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이며, 진실로 교육 수요자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양심 있는 교육자인지 궁금하다.

끝으로 교육도 우리나라 국시인 '민주주의 자유 시장 원리'에 의거하여 부단히 환류되고 피드백되어야 한다.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썩게 마련이다. 이 우주 삼라만상에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인간을 키우고 가꾸는 과정에서 '배우는 자든, 가르치는 자든 간에 평가를 하지 말라'는 것은 정말 소가 들으면 웃을 이야기다.
 
/김청규 혁신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