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 모녀를 살해한 범인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화두로 떠올랐다. 인륜을 저버린 범죄는 반드시 단죄해서 이런 끔직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 다시는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모아졌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3종류의 학설이 있다.
성선설(性善說)이고 그 반대입장이 성악설(性惡說)이다.
영국 철학자 존 로크(Locke,John)는 태어날 때의 오성은 백지(白紙)와 같다는 이른바 '백지설'을 제시하였다. 학설이 어떠하든 간에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 깎이고 다듬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코앞에 다가온 지식정보화시대에서 우리 후대들이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세계인들과 자연스레 교우하면서 질 높은 삶을 영위하려면 인천시교육청에서도 비전으로 제시했듯 '바른 인성을 지닌 창의력 있는 인재 육성'이 절실하다.
요즘 학교현장은 필자가 새내기 교단교사 시절인 60, 70년도에는 언감생시 꿈에도 생각지 못한 현대화된 교수-학습시설들이 구비돼 있다.
각 교실에는 기본적으로 TV 오디오 전자오르간 그리고 인터넷 강의가 가능한 컴퓨터와 프린터가 모두 마련되어있고 교무실 또는 학년연구실에는 최신형 복사기와 플린터가 설치돼 가르치는데 별로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교육환경이 탁월할지라도 스승과 제자간에,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그리고 동료들간에 끈끈한 정과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올바른 인성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
'나는 바담 품해도, 너는 바람 풍 하라'는 교육행태로는 올곧은 인격이 형성될 턱이 없다.
요 근래, 예전에는 학교에서 볼 수 없던 이상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다름 아닌 고학년 담임 기피현상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예전의 '하면 된 다' 는 비전과 희망 그리고 땀을 쏟는 열정은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편 가르기'와 '탓'만 무성하다.
'가르친 일'을 인생 3락(樂)의 성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하나의 노동직으로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통성을 부정적 시각으로 각색하는 일부 교육자들의 행태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 낱 볼품없는 은퇴자의 기우이자 노파심인지는 모르지만,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선출된 대통령을 폄하하는 글귀가 담긴 피켓을 들고 촛불집회에 참가한 어린 초등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적어도 십년 후에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국가에 봉사하고 기여 할 것인지? 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며칠 전, 부평 아카데미에서 '류 태영' 박사의 '천재를 만드는 유태인 가정 교육법'이라는 특강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유태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우수한 두뇌와 강인한 국민성을 지닌 종족이라는 사실은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수백 년간 나라 없이 세계 각국에서 떠돌이 생활하다가 나라를 세운 이야기며, 그 후 여러 차례의 중동전을 치루면서도 서울인구의 절반도 안 되는 역사가 일천한 나라가 주변의 1억 5천이 넘는 대 아랍 국가를 상대로 여러 차례의 전쟁이 터질 적마다 기적과 같은 연승을 하였고, 과학부문의 노벨 수상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삶의 법전이라고 말하는 '탈무드'를 통한 국가의 자긍심과 지혜의 터득을 부모 또는 교사(랍비)들이 몸소 실천하고 본(本)을 보여 줌으로서 가능함을 우리들에게 시사하고 있다.
'서투른 의사는 한 사람만을 위태롭게 하지만, 서투른 교육자는 수 십 명 아니 수백 명을 위태롭게 한다'는 말은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책임 진 모든 교육자들이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새겨야 할 경구(警句)가 아닐 수 없다. 다시는 이 땅에 인륜을 저버린 끔직한 사건이 없기를 정녕 갈구한다.
/김청규 인교연 혁신포럼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