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思

젊게 사는 법

길전 2009. 6. 16.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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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논단 기고/2009. 6. 2.(화)

             ‘젊음의 유전자’ 네오-티니(Neo-teny)

                                         김청규/인교연혁신포럼 대표


우리나라도 의료 기술과 소득이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되면서 바야흐로 100세 시대가 눈앞에 열리고 있다. 과거 상좌로 대접받던 회갑(回甲) 또는 희수(稀壽)의 나이는 이제 노인 측에 끼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인간 수명(壽命)이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노령기가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무조건 좋아만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긴 노년기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 건강하고 경제적인 안정은 물론 나름대로의 소일거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필자는 뒤늦게 주말 농사체험에 폭 빠져있다. 교대(敎大)동기 덕분에 비록 논을 메운 척박한 땅이긴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 봄, 청(靑)상추, 적(赤)상추, 시금치, 베이커리, 쑥갓, 아욱, 부추, 파, 열무, 감자, 호박 옥수수, 고구마, 콩, 등 십여 종이 넘는 채소를 가꾸는 재미가 그야말로 쏠쏠하다. 무슨 일이든지 한 번 손을 대면 확실하게 끝을 맺어야 마음이 편한 성격으로 때로는 힘이 부친 것을 느끼면서도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도 하는 필자이다.

 농사짓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예전부터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씨를 파종하고 어린 묘를 이식하여 뿌리가 착근되기까지는 그 고초가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실감한다. 우선 물(水)은 농사짓기의 필수요체이다. 척박한 땅에 가뭄이라도 들면 그 해 농사는 흉년이라는 말이 수긍이 간다. 왕조시대에 치수(治水)가 성군(聖君)의 주요 덕목으로 꼽는 까닭을 비로소 깨닫는다. 농사체험의 두 번째 고초는 끊임없이 자생하는 ‘잡초’와의 씨름이다. ‘아침나절에 김매기를 했는데, 오후에 뒤 돌아보면 한 뼘이나 자란 잡초가 또 눈에 띈다. 허긴 주말 농장 친구는 시효가 지난 현수막을 수거하여 밭 전체를 도배하듯 덮었지만 잡초는 현수막 속에서도 집요한 생명력을 과시한다.

 조류와 벌레 그리고 병충해와의 전쟁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콩 종류를 파종하면 민가 주변에 잇는 까치 또는 비둘기가 날아와 용케도 파종한 콩을 찾아 쪼아 먹는다. 김장재료인 고추 무 배추 등은 농약 없이는 수확이 사실상 곤란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농약대신 식용식초에 소주를 섞어서 작물에 뿌려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어느 날 지표를 뚫고 얼굴을 내민 새싹을 보노라면 마치 시집간 딸아이가 출산한 아기를 첫 대면한 것처럼 신기하고 감사하다.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이나 썩으면 수많은 씨앗을 잉태 한다’는 성경 말씀에 새삼 경외감을 느낀다.

 2년 전인가 이미 고인이 된 박경리 작가가 편안한 서울생활을 접고 강원도 오지에서 집필활동을 하면서 때로는 밭에 나가 작물과 대화하며 생활하던 모습이 아련하게 반추된다. 이 세상에 몸소 땀 흘려보지 않고서는 삶의 참맛을 느껴보기 어렵다. 밭에서 직접 뜯은 상추 쑥갓에 돼지 삼겹살 구워 쌈장 얹어 먹는 맛이란 직접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르리라.


 완벽주의 자(者)라는 닉네임이 붙은 필자는 퇴임하는 순간까지도 장수(長壽)시대니 초 고령사회니 하는 말과 더불어 노후는 미리미리 준비하고 훈련한 만큼 행복해진다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조건이 허락되면 퇴임 후, 동네 길가에 사무실 하나 얻어 교육컨설팅이라는 간판 걸어놓고 교육상담이나 하면 노후를 여유롭게 보내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마저도 평수 조금 넓은 새 아파트로 이주하는 바람에 한낱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은퇴 후에 재산을 증식하려는 사람, 또 집을 늘려 가는 사람, 그리고 예전에 잘 나가던 시절의 지위나 명예에 연연하는 사람을 일컬어 3불(不)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공무원 퇴직자 준비과정 연수회에서 듣고 고소를 금치 못하였는데, 정작 필자가 3불출 소리를 들을 줄이야!

 평생을 오로지 후대들의 행복한 홀로서기를 위한 교육행위만이 인생락(人生樂)으로 알았는데, 이순(耳順)을 넘긴 황혼기에 배우는 즐거움과 더불어 주말 농사체험 또한 이에 못지않게 즐겁고 기쁘다.

 노령기를 축복(祝福)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고행(苦行)으로 만드느냐? 는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렸고 또 실천의지에 따라 삶의 가치가 180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한 인천 북부도서관 평생교육담당자에게 정말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바람직한 노년기를 보내기 위해서는 노화를 막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극대화하라고 말하면서 특히 청년기의 특징을 보존하는 ‘젊음의 유전자’라고 하는 네오-티니(Neo-teny)를 잃지 말 것과 사고의 탄력성, 호기심, 기쁨, 유머, 일, 놀이, 학습 등이 우리를 젊게 하는 유전자라고 주장하는『론다 비먼(Ronda Beaman)』의 이야기는 100세 시대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오늘의 시니어들이 필히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 사려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