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미운 정, 고운 정
‘미운 정, 고운 정’
‘제 버릇 개 줄까’ 라는 말은 ‘타고 난 천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 일게다.
퇴임 후, 소일거리로 시작 한 농사체험이 빌미가 되어 보름 가까이 병원에서 고생을 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지인(知人) 소개로 신촌에 있는 Y정형외과 C전문의 덕분에 완치되어
퇴원한 것이 지난 주 초 월요일이다.
퇴원 후 처음 맞는 주말 아침이다. 아내와 함께 서운동 주말농장에 나가 겨울김장 무우를 파종했다. 조금 늦게 농장에 나타난 학교동문 후배가 무척 놀라는 표정으로
“재발하면 어쩌시려고 또 일을...”
“하도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나왔습니다”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요즘, 인생 칠십은 이제 노인 측에 끼지 못하는 세태다. 걱정은 되지만, 그렇다고 양 손 붙잡아매고 방만 지키기는 너무 이른 나이가 아닌가. 또 내 자존심이 도무지 허락하질 않는다. 나중에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움직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하지 않으면 밥도 먹지 말라’ 는 경구(警句)도 있지 않든가!
오히려 한나절 동안 움직이고 점심 먹으니 달아났던 입맛이 되살아나 그야말로 꿀맛이다.
엊그제 퇴원 후, 처음으로 추수치료를 위해 Y정형외과에 다녀왔다.
일부러 환자들이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서 오후 4시경 삼산동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지난 보름동안의 병상체험 하나하나가 주마등처럼 나타났다가는 사라진다.
아내와 딸 내외의 권고도 무시하고 지인이 소개한 y병원에 도착했을 때의 심란한 마음은 두 번 다시 입에 올리고 쉽지 않다. 동행한 안식구가 못마땅한 내 심기를 읽고는 위로는커녕 화만 돋는다.
“그러기에 내가 뭐랬소, 큰 병원에 가보자고 하지 않았오“
나는 속으로는 정말 울고 싶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병만 잘 고치면 됐지! 환경이 뭐 대수겠소, 당신 내 속 뒤집으려면 이제 집으로 가구려”
하면서 딴청을 피었다. 병원에서 제공되는 첫 날 석식은 입이 깔깔해서 도저히 목구멍으로넘길 수가 없었다. 그 날 밤은 거의 뜬 눈으로 새웠다. 바다 건너 영국 런던에서 중계하는 올림픽경기가 없었더라면 유난스런 폭염속의 열대야를 어떻게 이겨냈을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꿈찍하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뭇 사람들과 접촉하다보면 흔히 3가지 유형의 사람과 조우(遭遇)한다는 어느 유명인사의 칼럼을 접한 적이 있다.
첫 번째는 초면에는 무척 호감이 갔으니 사귀고 보니 별 것 아닌 사람, 두 번째는 겉보기에는 별 것 아닌 사람처럼 보였으나 사귀면 사귈수록 진국인 사람, 끝으로 처음이나 끝이나 온양지심 진국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3가지 유형 중 누구나 가장 사귀고 싶은 사람은 3번째 유형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2번째 유형을 더 선호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다. 일 년 전, 뜬금없이 나타난 ‘돌발성 난청’ 증세를 치료했던 모 대학부속병원과 이 번 척추질환으로 치료 받은 개인전문병원과는 처음부터 비교하지 말았어야 함을 요즘 뒤늦게 통절하게 뉘우친다. ‘이 세상에 최고선(最高善)은 존재하지 않는다’ 는 사실 앵무새처럼 수시로 되뇌이면서 왜 이사실을 정작 깨닫지 못했는지 지금도 귀바퀴가 뜨겁다.
Y정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신촌 정류장에서 내리니 마침 눈앞에 보이는 ‘2001 아울렛(옛 부평현대백화점)’이 눈에 들어온다. 투병 보름동안 매일같이 왼쪽 팔뚝에 링거주사는 물론 아침 저녁 두 번 엉덩이 근육주사를 놓아 준 다섯 명의 간호천사 그리고 역시 하루 두 번 정성껏 물리치료를 해 준 네 명의 물리치료사에게 뭔가 자그마한 마음의 뜻을 전하고 싶은 진한 충동을 느꼈다.
오늘 따라 입원기간 내내, 나의 마음을 가장 따끔하게 찔렀던 그 녀가 보이지 않는다. 과정이야 어쨌든 병을 치료해 준 C 병원장님의 건승과 더불어 Y병원가족 모든이들이 오늘 하루도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끝)
2012. 8. 19(일)/크리스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