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스크랩] 정녕 우리 후대는 누가 위하나? /`학교폭력 내용 기재 찬반을 접하면서`

길전 2012. 9. 25. 13:59

'학교폭력 내용 기재' 찬반 논란의 시각
[기고] 김청규 / 전 인천부마초등학교 교장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말처럼 40여 성상 몸을 담았던 교육계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 정말 안쓰럽다 못해 답답하다.

한동안은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학업성취도 검사에 대해 '한 줄 세우기 교육'이라며 일부 교원과 학부모 단체가 반발하였다. 연이어 '학생인권조례' 시행 여부로 교육과학기술부와 일부 시·도 교육수장들과 마찰을 빚더니만 급기야는 학교폭력을 한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여부로 또 마찰이다.

세상사 양면성이 있어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最高善(최고선)은 존재하지도 않고, 또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게 평소 필자의 소신이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 후대들의 행복한 미래를 책임지고 보장해주는 주체는 진실로 누구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요즘 학생 인권 존중 조례로 교사들이 법과 권위를 존중하는 소중한 가르침에 아예 손 놓고 있다는 이야기기가 들린다. 필자가 교사 시절 통용되던 '사랑의 매'라는 어휘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란다. 교사들은 폭력행위가 교실에서 버젓이 벌어져도 이를 제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학생이 수업 중 멋대로 교실을 휘젓고 다녀도 저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해가 바뀔수록 교단을 떠날 생각을 지닌 교사들이 크게 증가한다니 정말 걱정이다. 그럼에도 교과부와 일부 시·도 교육수장들은 힘겨루기만 하고 있으니 정말 짜증이 난다.

퇴임한 이듬해, 미국 LA에 사는 知人(지인) 덕분에 평생 마음에 담아 두었던 미국을 탐방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필자는 미국을 가기 전에는 민주주의 선진 시범국가로서 개인의 자유를 얼마나 만끽하면서 생활하느냐가 궁금하였다. 솔직히 미국은 하고 싶은 일은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처신해도 되는 나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을 방문하여 근 한 달간 체류하면서 체험한 결과는 그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 지켜야 할 일이 정말 많음에 놀랐고, 법과 원칙이 아주 잘 지켜지고 있음에 감탄했다. 일례로 고속도로 상에서 지정된 속도로 달리지 않으면 어느 틈에 경찰차가 쫓아와 범칙금을 매기는데, 이것은 웬만한 샐러리맨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액 범칙금이다. 그리고 저명인사라 할지라도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를 할 시에는 즉시 수갑을 채워 기소를 한다. 언감생심 우리나라에서는 생각도 못할 법 집행이다. 하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 다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이라는 사회가 온전히 지탱할 까닭이 없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이라는 국가가 세계 최강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

일찍이 동양의 성현 공자께서는 배움의 목적이 2가지 있음을 은유적으로 적시하였다. 즉 개인의 입신출세와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의 利(이)를 추구함이 그 하나요, 타인과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 즉 義(의)를 추구하는 목적이 둘이다. 따라서 대인은 利(이)보다는 義(의)를 추구한다고 설파하였다. 학생인권존중을 내세워 학교폭력 사유를 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자체를 반대하는 연유가 혹여 공자가 밝힌 義(의)보다는 利(이)를 추구함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최근 영국 노동당 정부가 도입한 학생 처벌을 전면 금지한 '노-터치(No-touch)' 교육정책을 포기하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反面(반면)敎唆(교사)로 삼아야 할 시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실에서 교사들이 규율을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불필요한 요소들을 없애줘야 한다'는 영국 교육부 장관 닉 기브 말은 학생인권존중만을 앞세우는 일부 교육자와 학부모들에게 하나의 示唆(시사)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한다.

출처 : 부평시니어기자단
글쓴이 : 기자 김청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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