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세탁기와 바꾼 반지
세탁기와 바꾼 반지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이로 흔히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비유하곤 하였다. 우리 가정도 경제성장과 더불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고부(姑婦)간의 갈등은 여전하다. 지인이 보낸 메일 중에 가슴을 훈훈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미담(美談)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크리스탈/김청규***
◀며느리의 글 ▶
시어머님 회갑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만 일이 터졌다. 큰형님이 하시는 사업이 부도가 나고 말았다. 걱정하실까봐 쉬쉬 했지만 어머님께서도 눈치를 채셨는지 회갑상은 행여라도 차리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점쟁이가 회갑날 아침에 굴뚝에서 연기만 나도 신상에 안 좋다고 했다며 이유를 대셨지만,어쩐지 곧이곧대로 믿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직장에 다니는 덕에 월급을 탈 때마다 어머님 회갑을 위해 약간씩 모아놓은 돈이 있었다. 잔치는 못하더라도 친지분들 모시고 아침이라도 먹자는 뜻과 함께 형님께 그돈을 조심스레 전했다. 그렇잖아도 맏며느리라는 위치 때문에 속앓이만 하고 있던 형님은 반가워하셨다. 마침 이 달에는 보너스까지 나와서 어머님께 드릴 석돈짜리 금반지를 하나 맞추었다.
회갑날 아침에 친지들과 아침을 드시던 어머님께서는 "나는 오래 살고 싶어서 생일날 아침에 불기운도 내지 말라고 했는데 며느리들이 말을 안 듣네." 하시면서도 기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한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셨다.
손님들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어머님께서는 형님께 말이라도 들으셨는지 "애썼다." 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일주일 후 어머님이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집에 오시더니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 전자제품 대리점으로 가셨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커다란 세탁기 하나를 사서 돈을 치르셨다.
세탁기 없어도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어머닝은 역시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시며 "고맙다"는 말씀만 하셨다.그 손을 마주 잡은 채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님 손에는 반지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시어머니의 글▶
큰아이 사업에 아무래도 안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다.전화기를 타고 들리는 목소리가 심상치않다. 역시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은 하지만, 작은 아이들 목소리도 편치가 않다. 아이들은 회갑 얘기를 꺼내지만 자식들 눈물을 팔아 어떻게 잔칫상을 받을 수 있겠나, 점장이 핑계를 대며 다 그만두라고 말했다.
그래도 저 착한 아이들이 아침상이라도 차린다고 하니 그것마저 마다할 수도 없고 착잡하기만 하다. 손님들이 돌아간 후 상을 물릴 때 큰며느리가 다가와 막내아기가 크게 도왔다고 내게 전한다. 막내아기도 또 저대로 나를 찾아와 큰형님이 애쓰셨다고 공을 돌리며 반지 하나를 내민다. 저희도 힘들 텐데 무슨 돈이 있다고...
집에 돌아와 금반지를 끼고 마을을 한 바퀴 휘 돌았다. 며느리가 해준 선물이라며 자랑했더니 모두들 자식 농사 잘 지었다고 칭찬을 한다. 그럼, 자식들, 며느리들은 잘 뒀지.예쁜 금반지는꼭 일주일 동안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그후 그 반지는 이웃 동네 금은방에서 돈으로 바꾸었다.장롱 깊이 모셔뒀던 시어머니의 반지들까지 이참에 같이 팔아버렸다.어차피 장롱 속에나 넣어둘 반지, 실컷 자랑이나 했으면 됐지 더 무슨 소용일꼬...
작은 며느리 퇴근 시간에 맞춰 찾아가 세탁기를 하나 사주었다. 날마다 직장에 다녀와서 밤이면 애들 빨래를 하느라 힘들어하면서도 고장난 세탁기 하나 바꾸지 않고 알뜰하게 사는 아이다. 그러면서 시어미 생일이라고 음식도 차리고 반지까지 사주는 마음이 가슴이 찡하게 고맙고 안쓰러웠다. 며느리 손을 꼭 잡으니 조잘조잘 말도 잘하던 아이가 아무 말이 없다. 젊은 나이에 벌써 거칠어진 손마디, 아가, 고맙다.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