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개교 60돌 기념 "부개초" 한마당 (동정)
개교 60돌 기념 "부개초" 한마당 동정
금년(2015년도)은 모교인 인천부개초등학교가 문을 연지 꼭 60돌이 되는 해입니다. 근자에는 회갑 잔치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얼마 전 까지 만 해도 부모님이 만60세가 되면 무병장수하신 것을 축하하고 음식을 장만하여 이웃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모교인 부개초등학교가 개교 60돌을 맞는다는 사실은 정말 자랑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인생은 흘러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다' 고 설파했다지만 지난 시절을 반추하면 정말 감회가 어립니다. 그래서 부개 개교 60돌 어울림마당 개회식에 참석하여 후배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부개초등학교 제1회 동문이 된 연유를 이야기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해방 전인 1944년에 부천군 소래면 과림리 중림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내가 겨우 걸어다닐 무렵 부모님은 고향을 떠나 부개동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부개동(富開洞)은 구한말 부평군 동소정면 마분리(馬糞里)였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부천군 부내면 마분리그리고 1940년에는 명치정(明治町)이라 불리다가 8.15광복 후 비로소 '부평의 초입'이라는 의미의 부개동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같은 지역(부천군)에서 출생하여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나야 말로 토종 부평 맨(Man)입니다.
부모님께서 부개동에 가게를 얻어 겨우 자리를 잡을 무렵인 1950년 6.25전쟁이 터져 피난살이 하느라 고생한 것은 입에 담기 조차 싫습니다. 아무튼 빼았겼던 서울을 유엔군의 도움으로 수복을 하면서 부평동초등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1951.9)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부평에 미군부대(ASCOM)가 주둔하면서 일자리가 많아 전국 방방곡곡에서 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부개동에 미군들이 지어 준 인천부평동초등학교 부개분실(1952.10)이 생겨 경인철로 남쪽에 거주하던 1~3학년은 이 곳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55년 5월 1일 인천부개초등학교가 로 정식 학교로 인가를 받고 1957.3. 첫 졸업생이 배출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우리 부개학교는 장족의 발전을 하여 부개서, 일신, 동수, 금마초 등 4개 학교를 분가 개교하였습니다. 지난 개천절 날(10월 3일)에는, 동문들이 모교 교정에서 개교 60돌 기념을 위한 총 동문 체육행사를 가졌습니다.
현재 부개초등학교에 몸을 담고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도 곧 부개초등학교 동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진학 또는 사업등으로 어쩔 수 없이 부개동을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린시절 선생님으로 부터 진한 사랑을 받으며 꿈을 키웠던 초등학교 시절은 어딜 가나 쉽게 잊혀 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가 중에는 한평생 모은 재산을 어린 시절 배움의 場인 학교에 희사하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 후배들도 ‘하늘 탓, 남 탓 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고 봉사하고 배워서(論語:不怨天 不尤人 行之 輿之 習之) 존경받는 사회인이 되어 모교를 더욱 빛내주기를 갈망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후배들의 정성과 땀이 밴 학습물과 운동 경기를 열심히 디카에 담았습니다. 다시 한 번 모교의 개교 60돌을 축하하면서 채호성 교장님을 비롯한 교직원 여러분과 후배님들 덕분에 오늘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제1회 졸업, 크리스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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