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동탄 이야기

노작, 홍사용 문학관을 찾아보다.

길전 2020. 12. 13. 14:15


‘나는 王​이로소이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발생한 연쇄적인 살인사건으로 화성시는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魔界지역이었다. 그러나 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가 무색할 정도로 최근 동탄은 제1도시에 이어 제2도시가 들어서면서 ‘사람 살기 가장 좋은 곳’ 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엄청난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 미래 지향적인 도시가 됐다. 오늘은 동탄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반석산 남쪽 기슭에 있는 ‘노작홍사용문학관’을 찾아보았다.

 

 


**노작 홍사용의 삶**

 

노작 홍사용(1900~1947)은 경기 용인군 기흥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아홉 살 되던 때에 화성 동탄면 석우리로 이주하였다. 그 뒤 사숙에서 한학을 수학하다 17세에 서울 휘문의숙에 입학하여 수학 중 1919년 3.1운동에 참여 옥고를 치르고 귀향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근대 낭만주의 문예종합 동인지인〈백조〉를 간행하여 「나는 왕이로서이다」,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 「봄은 가더이다」 등의 시를 발표한다. 하지만 그는 〈백조〉에 많은 관심을 쏟았음에도 실제로는 한권의 시집도 내지 못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 때는 근대극 운동의 선구적 극단인 〈토월회〉에 가담하여 서양 극 번안과 더불어 직접 연출도 한다. 광복 전 잠시 이화전문에 잠시 출강하다가 8.15 해방 후, 구국청년단에 가입, 청년운동을 전개하려 하였으나 지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7년 생을 마감하였다.

 

 

 

현재 노작홍보관은 코로나19 사태로 임시 휴관 상태이나 모든 공간은 동탄 주민들과 예술가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1층에는 산유화극장(소극장), 제1전시실, 수장고, 작은 도서관노작, 사무실이 배치되어 있고 2층에는 제2전시실, 강의실, 청소년자료실, 노노카페와 야외테라스 등이 있다.

 

 

**노작홍사용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中**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로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그 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둑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 하며
감중연하고 앉았더이다.

 

아- 뒷동산 장군바위에서 날마다 자고가는 뜬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설움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 크리스탈/명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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