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동탄 이야기

세상사 最高善은 존재하지 않는다

길전 2020. 12. 14. 13:42

동탄 왕배산 둘레길을 걷고서...

 

지난 해 이맘 때,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19' 가 수구려들기는 커녕 오히려 확산현상을 보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구인들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모범국가로 회자되던 우리나라도 12월 8일 0시부터 수도권은 '사회적 거리두기' 를 2.5단계로 비수도권은 2단계로 강화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당장 오늘 자정부터는 학원,노래방, 헬스장, 등은 문을 닫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종교 예배 활동은 물론 결혼식과 장례식 그리고 초·중등학생들의 등교도 비대면 원칙에 의거 제한을 받게 된다. 늘 해오던 신년 벽두 보신각 타종 행사도 올해는 하지 않는단다. 그만큼 지금의 코로나 사태가 심각하다는 증좌다. 야구경기에서 9회 말 쓰리 아웃 선언이 있을 때까지, '끝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가 떠 오른다.

 

올 4월 초, 평생 생활 터전이었던 인천(부평)을 떠나 생무지 화성 동탄에 오지 않았다면 일년이라는 언택트속에서 지금 어떤 모습으로 지낼까? 을 생각해 보았다. 9개월 째 접어드는 동탄에서의 생활을 반추해보았다. 화성시 관내에 흩어져 있는 역사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녔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화성복합문화센터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읽었다. 그리고 역사문화 유적지 탐방문과 독후 소감을 쓰고 때로는 지인들에게 소개 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한 시간을 소진하기 위해 나름대로 발버둥 친 일과였다. 하지만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 얻는 것이 있으면 하나 잃는 것도 있다' 고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한반도는 70%가 산이다. 희수(喜壽)의 나이를 먹도록 몸 담았던 인천에도 기서(畿西) 제일 명산이자 진산(鎭山)으로 소문 난 문학산과 계양산이 있다. 특히 부평의 계양산은 매주 금요일이면 금사회(金師會)원들과 이야기 나누며 둘레길을 걷던 산이다.

'계양산 마니아 소망' 이라는 글을 인천일보의 인천광장(2007.4.19)에 투고한 적도 있다. 지금 새롭게 변신을 꾀하고 있는 동탄에도 여기 저기 산들이 있다. 집에서 15분 지근거리에 있는 반석산은 어제도 에코 둘레길을 걸었다. 동탄과 용인시와 경계를 이루는 무봉산(舞鳳山360.2m)은 '봉황이 춤을 추는 형상'이라는 유래와 더불어 통일신라때 창건하였다는 만의사(萬義寺)라는 절도 있다. 안식구가 한달에 서너 번 씩 가는 용화사(龍華寺)를 품고 있는 필봉산(筆奉山144.2m)은 조선 정조가 '붓 끝처럼 생겼다'하여 부르는 지명이다.

 

잠자리에서 눈을 떠 창가 커튼을 제치면 남동탄 방향으로 희끄머리 보이는 산이 있다. 분명코 그 곳에도 둘레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요기를 하고, 그동안 꿔다놓은 보리쌀처럼 세워두었던 '전동 스쿠보' 를 타고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화성시동탄경찰서 앞 경부고속도로 지하차도를 지나 동탄대로를 신나게 달렸다. 집에서 보기에는 꽤 멀어 보이는데, 20여 분도 안 돼 통탄대로 10길이라는 도로표지판이 붙어있는 왕배산(王拜山148.7m)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왕배산 등산로 안내판을 들여다 보고 나무테크로 조성한 계단길로 들어섰다. 동네 뒷산이라 대단치 않게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산 형세가 사기 밥그릇을 엎어놓은 것 처럼 오뚝한 탓인지 경사가 생각한 것보다 가파르다. 등 뒤 속옷에 땀이 베어 왕배산 정상까지(770m) 가는 동안에 등산로 벤치에 두어번 걸터 앉아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왕배산' 지명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한사코 모른단다. 귀가하여 화성시역사박물관에 전화를 걸어 겨우 유래를 알 수 있었다. '한양에 계신 임금께 문안 올리는 신하의 모습을 닮아 왕배산(王拜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다. 어쨌던 객지 동탄에서 또 하나의 유래가 담긴 왕배산을 몸소 걷고 또 명심일기장에 남기게 되어 오늘도 의미있는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심신이 홀가분하다. ***크리스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