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思

108학급 학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2021. 6. 24(목)

길전 2021. 6. 24. 00:16

 

'사람이 한 생애를 살아가는데 보통 2천 내외의 이웃들과 관계를 맺는다' 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40여 성상 열 두학교를 거치면서 동료교사,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과 인연을 맺었으니 그 이상은 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좋은 만남이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드는 만남도 없지 않다.

 

학교장과 교단교사 간 교량적 역할을 해야하는 위치에서 세 번째  근무한 인천 계양구내 A초교는 강화도 전체 학생 수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108학급에 재적 학생이 5400명에 달했다. 이 학교 교장이 교육청에 나타나는 날이면 'A교육장 이 떴다'는 우수개 소리가 회자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아무튼 나는 교장승진 강습을 앞두고 6학년 540명 학생들의 신라 고도 경주 역사탐방을 하는데  인솔 책임자로 동행하게 되었다. 

 

관광버스 15대가 쭉 뻗은 경부고속도로 구간을 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지만 웬만한 학교의  전교생 규모에 버금가는 학생들을 인솔하는 나는 2박 3일 동안 한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무리없이 수학여행을  잘 마쳤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시교육청 감사실에서 직원이 학교를 방문하여 면담을 요청한다. 면담 중 핵심 질의내용은 크게 3가지다.

 

수학여행 출발 첫날, 고속 도로상에서 학생들을 하차시켜 다른 버스에 합승시켰느냐? 가 첫째 질문이다.  두 번째는 귀가 전 날 저녁에 담임교사들에게 자유시간을 제공했는냐? 여부다. 끝으로 숙소 주인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지 않았느냐? 가 핵심이다. 세상사 모든 문제는 조직 내부에서 싹트게 마련이다. 이번 6학년 수학여행에 참가한 어느 누군가가 학교 또는 총 인솔 책임지인 나를 불명예스럽게 만들기 위해 시교육청 감사실에 투서했음이 분명하다.

 

 새내기교사시절은 '페스탈로치'  중견교사 때는 '완벽주의자' 교감이 되어서는 '원칙론자' 그리고 교장이 되어서는 '크리스탈'이라는 별칭을 들었던 나로서는 속된 말로 하나도 꿀릴 것이 없다.  첫번째 질의,  여행중 학생 합승문제는 엔진 과열로 인한 냉각수 분출로 운행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이들 안전상 하차시켜 다른 버스에 분승시킨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근처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냉각수 고무마개를 교체하여 차후 일정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었다.  

 

두번째 교사들의 자유 시간 허용은 이튿날 장시간 귀경길 안전을 위해 총 책임인솔자 재량으로 내린 조치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방기한 것도 아니다. 인솔 책임자인 교감이 몸소 아이들을 지켜주지 않았는가.  끝으로 금품 수수에 관한 문제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촌지 문화로 학교 현장이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학년부장이 경주 법주와 기념 타-올을 받아 버스에 실은 것은 잘한 노릇은 분명 아니다. 이 세상 먼지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속설이 있다.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는 신조어도 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이 번 수학여행 인솔교사 중에는 참교육을 신봉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참교육’ 자체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얼마나 신선하고 좋은 용어인가! 솔직히 교육현장 민주화를 위해 애쓴 공적도 인정하는 '나'다. 교육을 백년대계라 함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중시한다는 의미다.  학생존중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를 내세워 표플리즘에 사로잡혀  '가르치는' 본분을 등한시 하는 교육자는 당연히 교육현장에서 가려내야 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물길 열 길 속은 알아도 사람 한 길 속은 알 수 없다’ 는 말은 참으로 무서운 경구다.  시 교육청 감사담당자는 '나' 외에도 학년부장과 학년친목 담당교사를 면담하였다. 그런데 한 달이 되도록 아무런 말이 없다. 궁금하여 행정실장을 통해 알아본 결과 '없던 일로 처리되었다' 는 답변이다. 이 사단을 만든 교사는 경기도 관내로 전출하였다가 신병문제로 교직를 아예 접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나와 만나지 않았으면 이런 악연은 없었었을 텐데 말이다.  ***크리스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