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을 접하고서.../2021.7.29.(목)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는 『가천길재단』이길여 회장이 중앙일보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제하에 연재된 글을 모은 책 이름이다. 지난 7월 22일 날, 인천시립박물관의 ‘52년 인천생 곰표’ 특별 기획전을 관람하고 인근에 있는 가천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접한 책이다.
이길여 여사(89세)는 전북 옥구에서 태어나 군산 대아초교, 이리여고를 거쳐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여 졸업 후, 인천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개원(58년)한 의료인이다. 2회에 걸쳐 미국과 일본에서 선진의료기술을 익힌 후, 인천중앙길병원 설립(87년)하였고 98년에는 후대 의료인 양성을 위한 가천의과대학을 설립하였다. 그 후, 경영난에 빠진 경원대와 경인일보를 인수하여 의료·교육·사회·문화를 아우르는 비영리 공익재단 설립자론 이병철·정주영에 이어 열두 번 째, 한국경영학회 ‘명예의 전당’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는 말이 있다.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를 통해서 이제 곧 졸수를 앞둔 이길여 회장이 한 생애를 오로지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처럼 환자와 학생, 그리고 이웃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 온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책 서두에서 ‘어릴 적 나는 바람개비를 돌리기 위해 열심히 달렸고, 바람이 센 산위에도 자주 오르곤 했다. 돌이켜 보건대 바람개비는 내 삶의 표상’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바람개비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지 않는다. 내가 늦은 나이에 이길여 회장을 흠모하게 된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환자가 너무 많아 하루 4시간 밖에 못자고 의료기기와 의약품이 늘 부족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자신에게 봉사할 기회와 능력이 주어진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고통스런 환자들을 위해 결혼도 포기하고 오로지 이들 환자들을 따뜻하게 치료해주고자 했던 이른바 충만한 박애정신에 절로 머리가 숙어진다. 뿐만 아니라 조금 여유가 생기면 의료 취약지에 눈을 돌려 경기도 오지 양평과 백령도 그리고 철원에 병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또 근자에는 의학 취약분야인 뇌과학 연구소를 비롯하여 암센터·심장혈관센터 등 기초의학부문에 계속 투자를 늘려나가고 있다는 점도 세간의 주목거리이다.
두 번째, 이길여 여사는 비록 독신이지만,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고 특히 모교와 고향애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썩어도 준치’란 별칭이 붙은 부평 모 학교에 근무할 당시 여름방학 때라고 생각된다. 전북 군산대야초등학교 여자 탁구선수들이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길병원 연수원에 묵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학교 탁구부가 전국 4관왕을 차지하는 이면에는 이길여 여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원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모교 6학년 학생들을 해마다 초청해 병원과 대학을 보여주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꿈을 심어주고 있다. 이밖에도 어릴 때 형성된 인성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신념으로 「가천미추홀청소년봉사단」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살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끝으로 가천 이길여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즐겼으며, 방대한 양의 도서를 탐독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난 7월 22일 가천박물관을 방문하였을 때, 2만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창간호를 소장하고 있는 기록문화 공간이 마련되어 있음을 보고 크게 놀랐다. 한국잡지의 태동기인 개화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학술· 문예· 종합 ·전문· 교지 등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며 현재 세계기네스 기록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의 남다른 식견과 혜안에 그저 놀랐뿐이다. 대한민국의 흔치않은 여걸이 아닐 수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