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思

21일간의 병상생활을 되새기면서/2021.10.22.(금)

길전 2021. 10. 22. 08:36

나이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소식적에는 병원과는 거리 두고 지냈다.  하지만 칠십 고희을 넘기면서 병원을 가는 빈도가 잦다. 부끄럽지만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치과이다. 임플란트 치아가 자그마치 10개나 된다. 다음 순위가 척추 협착증으로 다니는 신경외과이다. 인천관내 개인병원에 수차례 다니다가 종국에는 서울 강서구 「다나은신경외과」에서 시술을 받고 그런대로 생활한다. 이밖에도 부천 순천향대학병원에서 돌발성 난청 치료경험이 있고, 또 지인이 소개하는 서울 모 안과에 서 백내장 시술을 받은 적도 있다.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을 ...

사소한 문제를 내버려 둘 겨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 또는 1:29:300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지난 925일 지인(31)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어지럼 증세가 나타났다.  모임 참가를 취소하고 급하게 한림동탄성심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뇌경색'' 징후라는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엎질러진 물,  누구를 원망한다 말인가!  정기적인 건강검진 때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 수치가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도안 무심했던 '나' 스스로가 정말 딱하고 한심스럽다. '세상사 모든 업보는 타인이 아닌 바로 당신이다' 라는 경구가 머리를 야몰차게 흔든다.

 

중환자실에서 23일동안 

주말, 병원 응급실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CTMRI 촬영을 마친 나는 곧바로 의료용 침대에 실려  중환자실로 이송 되었다. 중환자실로 가는 것이 좋을 일이 없었지만 뇌혈관을 막은 혈전을 빨리 해소시키지 않으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은 최첨단 의료시설들이 고루 갖춰 있지만, 외부와는 단절된 특별 공간이다. 씻고, 먹고, 자고. 용변조차 모두 침상에서 해결해야한다. 핸드폰은 응당 사용할 수가 없다. 면회는 하루 한 번 보호자 1인에 한해  그것도 점심식사 시간 전후 20분이 고작이다.

 첫 날은 얼결에 지났지만, 이튿날은 불안하고 답답해서 더 머물러 있으면 정신 이상 증세가 나타날 것만 같다.

 

'일반병동으로 옮겨주지 않으면 퇴원하겠다' 고 소리 질렸더니 간호사들은 주치의 허락 없이는 불가 하다고 달랜다. 면회 온 안식구에게 읽을거리를 부탁했더니 담당 간호사가 고맙게도 인간의 흑역사라는 제목의 책을 갖다 준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이야 말로 정말 백의천사가 아닐 수 없다. 박정희 정부시절 외자 도입을 위해 서독에 파견되었던 간호사들이 시신을 닦으며 눈물을 쏟았다는 이야기가 뜬금없이 떠오른다.

 

 

간병인이야기

너무나 길게만  느꼈졌던 주말 이틀이 지나고, 새 주 월요일 아침 주치의 M교수의 회진이 있었다. 언제 누구에게서 전해 들었는지

퇴원하겠다고 난리를 쳤다면서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일반 병실로 이송하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고맙습니다.”

대신 간병인이 있어야 합니다.”

, 알겠습니다.”

지옥 같은 중환자실에서 벗어 날 수 있다니,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기쁘다. 어떤 제안도 수용하고 감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8층 일반 환자실에 들어가니 짧은 머리에 배가 불뚝 나온 오·육십 쯤 되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특이한 북한 말투의 목소리에  조선족 아니냐?' 했더니 그러하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병원 간병인 중 9할 정도가 중국에서 건너 온 조선족이라고 말한다. 요즘 우리나라 시중에 중국인들이 넘친다는 이야기에 수긍이 간다. 

 

K씨는 간병 경험이 많은 때문인지, 내가 조금 움직이는 기색을 보이면 이내 달려와서 붙잡는다. 천성이 남의 도움받기를 싫어하는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손수 하겠다고 했더니 겸연쩍 한다.  그래야만 하루라도 빨리 재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로지 내 생각이다. 

 

 ‘여우보다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한다. 부자연스럽던 수족이 차츰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자 주치의는 재활의학과로 전과(轉科)하거나 아니면 재활전문요양병원으로의 전원(轉院)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주변의 여러 사람을 통해서 재활전문요양병원’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재활 치료는 박세게 시키나 입원실 분위기가 중환자실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에 전과(재활의학과)를 택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수족을 쓰지 못해 타인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요양시설(병원)에 입소하리라 생각이했었다.  그런데 막상 중환자실에서 2박3일 동안 실제로 겪어 본 후에는 집에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면 받았지, 다시는 요양시설 근처에얼씬거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루에 10만원 내외의 간병비가 부담이지만 돈이 무슨 큰 대수란 말인가! 허긴 10여일 남짓 간병비를 100만원을 이체하고 보니  '배(치료비)보다 배꼽(간병비)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자청해서 통합간병인이 있는 일반 환자실로 또 옮겼다. 주변 병실에서 아내가 간병을 해 주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다. 

 

납득되지 않는 2가지 의문?

일송 윤덕선은 북한지역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출생한 대한민국 1세대 의사이자 한림대학교를 설립한 교육자이다. 서울에  한강 · 강남성심병원 그리고 춘천 성심병원에 이어 지난 2012년에는 경기 화성시에 동탄성심병원을 세워 진료를 개시(2012. 9)하였다.  따라서 한림대동탄성심병원 4층 건물내에는 설립자 일송 윤덕선(1921~1996) 박사의 홍보전시관이 있고. 야외공원에는 다양한 형상의 조각 작품들도 조성되어 있다. 나는 마음이 심란하다 싶으면 이 곳을 찾아 산책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곤 했다.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2가지가  있었다. 우선 갑작히 나의 () 수치가 높아진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또 하나는 음식 연하곤란증이 있다는 검사결과도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뇌경색의 원인인 고혈압과 고지혈증 수치가 높다는 사실은 2년마다 실시하는 건강 검진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혈당 수치 그리고 연하증세가 있다는 사실은 정말 금시초문이다하루 3끼 식사시간을 전후하여 측정하는 당 검사에서 혈당 수치가 150을 넘긴 적이 없다.

 

또 식사를 하면서도  불편함을 한 번도 느껴 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제 「토로미를 물 또는 국에 섞어 먹지 않는다고 채근하는 인턴의을 보면 솔직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환자는 의사를 믿고 처방에 따라야 함은 지당하다. 하지만 환자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고 설명해줘야 하는것이 정도가 아닐까!! 무조건 처방에 따르라고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제3차 혈액검사(1126)가 있다하니 더 지켜 볼 참이다.

 

각별히 생각나는 사람들...

짧다면 짧고 길다고 생각하면 긴, 21일간의 병상생활이다. 병원에서 생면부지의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부지불시간에 인과관계가 형성되고 정분도 생겼다. 그 중에서도 중환자실에서 읽을거리를 제공한 K 간호사와 통합 간병실(959)C간호사는 너무 고맙다  그리고 재활물리실의 다정다감한  H치료사 역시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밖에도 854실에서 침상을 마주보고 대화하던  8세 연상의 어르신도 눈에서 선하다. 하루빨리 건강 회복하시어 가정에 복귀하시길 기원하면서 글을 맺는다. 이 글 접하는 모든 학교동기 및 지인들 항상 건강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