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가 생각나는 날
요즘 나의 하루 생활은 채 바퀴 돌리는 다람쥐만큼이나 단조롭다. 우선 식전에 눈 뜨면 먼저 하는 행동은 아파트 1층 우편함에 꽂혀있는 신문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일이다. 변비증세가 있어 오랜 시간 좌변기에 앉아 있다 보면 얼추 신문을 전부 읽는다. 혹여 다 못 보거나 더 자세히 정독해야 할 글이 있으면 아침식사 후 본다. 다음 차례는 학교 친구나 지인들이 올린 카-톡 검색이다. 보통 하루 삼·사십 개 의 문자나 영상자료를 모두 접하다 보면 어느새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 떠 있다.
이 때부터 컴퓨터 책상머리에 앉는다. 그리고 두 서너 시간 자판기를 두드린다. 근래 책이나 신문에서 보았거나 아니면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가 쓰기 주제가 된다. 일찍이 협착증세로 고생한 것도 따지고 보면 꽤 오랜 시간 컴퓨터 책상머리에서 글쓰기를 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정년퇴임식 그리고 고희 때, 두 번에 걸쳐 자서전을 발간하여 세상에 내보인 것도 이와 같은 글쓰기 습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때그때 쓴 글은 가족과 지인들 카-톡 방에 올린다. 어쭙잖은 글을 여러 사람에게 알린다는 것 자체가 ‘팔불 같다’ 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글이란 말과 달라서 영속성과 더불어 대중성도 있다. 전에는 인터넷 사이트나 카페에 올렸지만, 요즘은 주로 내 블로그와 카-톡 방에 올린다.
글을 쓰는 목적은 단 2가지다. 떨어져 생활하는 딸과 아들 그리고 형제와 친·인척들 그리고 지인들에게 내가 아직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이고 나머지 하나는 치매예방 차원에서 글쓰기를 한다. 물론 ‘하경’ 어미는 ‘아빠 이젠 가족이야기 그만 썼으면 좋겠다’ 고 호소한다. 하지만 솔직히 소소한 가족관련 이야기 아니면 글 쓸거리가 없다.
솔직히 미수(米壽)를 코앞에 둔 지금 내 취향에 맞는 글쓰기마저 접는다면 무슨 재미로 지낼 것인지 난감하다. ‘희망을 잃으면 그 순간부터 늙는다’ 는 유명한 말을 남긴 『괴테』가 떠오른다. 하물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친구 및 지인들이야 내 글에 대한 반응이 구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친구이야기로 튀었으니 ‘참다운 친구’에 대한 글을 더 적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지난해 초에 세상을 뜬 초딩 친구 이외는 절친 이름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가끔 만나 술 한 잔 나누는 학교 동기와 지인들은 더러 있다. 그런데 이들이 과연 내가 정말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나를 진정으로 도와줄까? 생각해보곤 한다.
내가 절친이 없다고 생각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과연 나는 이웃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 스스로 반문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일은 전적으로 자기가 하기에 달렸다’ 고 하는 글과 더불어 예로부터 친구로 삼지 말아야 사람으로 ‘5無(무정·무례·무식·무도·무능)을 적시한 글을 인터넷 창에서 보았다.
‘참된 친구란? 어떤 친구일까?’ 논어에 공자께서 제시한 기준이 의하면, 먼저 유익한 세 친구 즉 익자삼우(益者三友)의 기준은 정직한 사람 · 신의가 있는 사람 ·견문이 많은 사람이고 반대로 해로운 세 친구(損者三友)는 아첨하는 사람 · 줏대 없는 사람 · 겉으로는 친한 척하고 성의가 없는 사람이라고 제자들에게 설파하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언제 어느 때나 만날 수 있고, 만나도 부담 없는 친구! 그런 친구가 있다면 정녕 세상 살맛나고 행복한 사람이 아닐 런지... 내가 아는 모든 친구들과 지인 또 당신이 아는 모든 친구들과 지인들이 2022 壬寅년 올 한해도 건강과 행복이 늘 충만하기를 기원하면서 글을 접는다.
*팔불출 시니어의 단문일기/202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