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가.”
근자 주변의 친·인척과 가까운 지인들의 소천 소식을 자주 접한다.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모임을 갖지 못하던 퇴임교원 모임에 나가보면 겨우 이·삼십 명에 불과하다. 지난 3년이 안 되는 기간에 세상을 하직한 회원이 20명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크게 놀랐다. 이틀 전에는 한 살 아래인 사촌 매제가 5년 여 병고 끝에 세상을 떠 부천장례예식장에 문상을 다녀왔다. 귀가 하는 전동차안에서 불가에서 회자되는 生老病死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무서운 명언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식 날인 오늘 신문 오피니언란에는 청란교회 담임목사이자 하이패밀리 대표의 “그대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가” 라는 글이 시선을 끈다. 2018년 2월 시행된 “사전연명 의료 의향서”는 한국사회에서 존엄사의 첫 분기점이라고 하면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등록자가 157만 명이라고 한다. 이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한 25만 6377명 중 약 83%이 벼락치기로 마지막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즉 10명 중 8명꼴로 “사랑 한다”는 말 한마디도 남기지 못하고 이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준비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라고 오피니언은 질타한다.
한국인은 66~83세까지 17년, 삶의 5분의1을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주렁주렁 기계장치를 달고 코 줄로 영양공급을 받으며 최대한 서서히 죽어간다. 죽음은 집이 아닌 요양시설과 종합병원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맞이한다. 4명중 3명꼴이다. 미국 43% 영국49.1%와 비교해도 대한민국은 지나치게 높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에 죽음 지수가 꼴찌라고 하면서 이 부끄러운 수치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떻게 살 것인가’을 ‘어떻게 죽을 것인가’ 로 질문을 바꾸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잠은 깨어나게 될 죽음이다. 죽음은 깨어나지 못할 잠이다. 이래서 죽음을 永眠(영면) 이라 하고 잠을 熟眠(숙면)이라 한다. 잠과 죽음은 신기하리 만큼 닮았다. 쾌면이 건강을 보장하듯 준비된 죽음이 인생을 존엄하게 한다. 누가 죽음을 실패라 했는가. 모든 인생은 必滅者(필멸자)이다. 진짜 실패는 산 죽음이나 개죽음이다.
이제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나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래야 사후 장례식이 아닌 사전 장례식이 늘어 날 것이다. 살아서 화해하고 작별인사하고 따뜻한 밥 한 그릇 나누고 떠나는 ‘엔딩 파티’ 말이다.
다가오는 부활절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대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가.”
* 이 글은 2023년 4월 6일자 중앙일보 오피니언 글을 각색한 글입니다.
+크리스탈 힐링 일기/2023.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