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화성1경, 융 · 건릉에 다녀오다.
어제는 매달 둘째 주 목요일마다 개최되는 교직 퇴직자 모임이 인천 제물포역 인근 교총회관에서 있는 날입니다. 지난 달 인천송도 경제자유구역청에서 있는 모임에 참석지 못한데다 금년 들어 새로 제작된 회원 수첩을 받지 못해 집 앞 아파트에서 08:35분에 병점역 경유하는 100번 마을 버스을 탔습니다.
뒤이어 내 나이 쯤 되어 보이는 여성 시니어가 버스를 타지 못하고 힘들어합니다. 건강이 좋지 못한 것 같아 손을 잡아 주었더니 고맙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근자 얼마 전에 같은 경로당에 가입한 회원입니다. 목적지가 동일한 인천방향이라 구로 역에서 환승하여 인천까지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지루한 줄 몰랐습니다.
오늘 모임 인천교장원로회 강좌는 인천에서 내 노라 하는 여교장님의 《나만의 향수 만들기》입니다. 운 좋게 향수 선물까지 받았습니다. 모임이 끝나며 팔순기념문집 의뢰 인쇄소에 들러 볼 작정이었으나 통화만 하고 그냥 귀가 했습니다. 대신 문집 표집에 필요한 사진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침 수저 놓기가 무섭게 안녕면 효행로 481번 길21, 융·건릉(隆· 健陵)으로 달렸습니다.
효(孝)의 고장이라 일컫는 화성시에도 명승지 8경이 있습니다. 이 중 화성 1경으로 지정 된 화성시 현릉원은 조선 22대 정조가 친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영우원을 풍수 좋은 곳을 찾아 지금의 위치로 옮겨오면서 새로 지어올린 이름입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신분을 왕으로 높이고자 하였으나 생전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대신 현릉원을 왕릉에 버금가도록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사도세자를 장종으로 그리고 현릉원을 융릉으로 고처 부른 것은 26대 고종 때부터입니다. 건릉은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 현릉원(융릉) 동쪽 언덕에 조성되었습니다만. 효의황후가 세상을 떠나고(순조 21) 장례를 치를 때, 건릉 자리가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겨 합장하였다고 합니다.
물은 계속 흘러야지 흐르지 않고 고이면 썩게 마련입니다. 세상사 고통 없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이 내 평생 좌우명입니다만, 나 역시 젊은이들로부터 ‘골통’이라는 비웃음 소리 듣지 않는 지? 자꾸 의구심이 듭니다. 하지만 요즘 이념에 물든 젊은이들이 더 눈에 띕니다. 인간은 편견에 물든 주관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의 허물 깨닫기가 그리 쉽지 않은가 봅니다.
아무튼 너· 나 할 것 없이 살아 숨쉼에 감사하면서 이웃을 위해 易地思之(역지사지)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올바른 삶이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글을 접습니다. 감사합니다.
+크리스탈 힐링일기/2023.06.0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