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雪 날, ‘느티나무회’ 를 생각하다.
학교장과 교사들 간의 교량적 역할을 하는 새내기 교감으로 임명(1988.3)되어 최초 발령받은 곳이 인천광역시 서구 관내 학교 역사가 일천한 S초등학교다.
행정구역상 한 때 경기 김포에 속했던 이 지역을 가리켜 인천 사람들은 흔히 ‘개 건너’ 라 불렀다. 인천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짧은 기간에 인구가 크게 유입되어 1982년 3월 개교 한 학교다.
발령 시 학교 교목이 느티나무인 이 학교에 어쩌다 경기·인천지역에서 해박한 교육지식과 경륜이 뛰어난 L교장과 함께 부임했다. 그래서 L 교장과 함께 동고동락한 당시의 교직원들이 만나는 모임 이름이 ‘느티나무’ 친목회다.
유명세가 붙은 교장을 보필하자니 은연중 스트레스를 아니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상사가 동전의 양면 같아서 부정적인 측면이 있으면 긍정적인 면도 있게 마련이다. 새내기 교감으로 교육식견이 부족한 나는 무의식적으로 L교장으로부터 많은 교육 노하우를 전수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교육목표는 창의성교육 과 인성교육이었다.
L 교장의 학교 경영방침으로 5학년 학생을 중심으로 창의반을 개설 운영하게 되었다. 어떤 일든 無에서 有를 만들기는 참으로 힘들다. 방과 후 창의반을 1년 간 지난한 어려움을 참고 운영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천 사례를 정리하여 '아이디어 발상 지도자료 집' 을 펴내 인천관내 학교에 보급하였다. 그 후, 학부모 교육용 바른인성교육(장학자료95-4) 자료도 발간했다.
L 교장은 S학교에서 3년 남짓 함께 근무하다가 남부 지원 교육장으로 영전하였다. 그 후, 인천과학연원 원장, 인천광역시 초등교육국장, 그리고 퇴직 후에는 인천교위위원회 위원 및 의장직까지 수행하였다. 교육계에서 은퇴 후에는 인천 광역시 후원단체 ‘인천사랑하기’ 회장까지 역임하였다.
느티나무회 모임은 당초 회원이 스무명 이상이었다. 그러나 여러 사유로 모임에서 빠져 정회원은 12명 나붓 했다. 산행도 하고 동남아 및 중국· 일본도 세 차례 방문했다. 그러나 다수 회원들이 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하는 고희를 넘기면서 참가 수효가 차즘 줄어들기 시작하여였다. 며칠 전에는 느티나무회 모임의 상징인
L 교장이 영면하였다.
이제는 생존한 회원보다 세상을 하직한 회원이 오히려 더 많은 역전현상이 생겼다. 그것도 나를 포함한 생존 회원들 모두가 한결같이 건강이 좋지 못하다.
근자 불가에서 말하는 生老病死라는 사자성어가 뼈가 시리도록 와 닿는다.
오늘은 절기상 ‘일 년 중 눈이 가장 많이 온다’ 는 大雪이다. 아침나절 ‘노후 처세 명심보감’ 라는 카톡 영상 문자를 받았다. 12가지 실천 내용이 버거운 것은 없지만, 이제 와서 더 오래 살겠다고 노후 처세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大雪인 오늘 차라리 눈이라도 펑 펑 쏟아졌으면 좋으련만, 온종일 창가에 들어오는 해볕이 오히려 얄궂기만 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癸卯년 무탈하게 넘기고 甲辰년 첫 날 뜨는 해를 집 뒤에 있는 구봉산 정상에서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맺는다. 이 글을 보는 지인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면서...(끝)
***크리스탈 힐링일기/2023. 12.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