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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석학 가다머(Gadamer)는 '인간은 어차피 편견을 지닌 주관적 존재'라고 일찍이 설파하였다. 이 세상에 최고선(最高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어떤 정책이나 시책이든 간에 긍정적인 면이 있으면 부정적인 측면이 있게 마련이다. 지구가 한 울타리로 글로벌화한 작금에 '우물 안 개구리'같은 기존 상식과 행태로는 우리 후대들의 질 높은 삶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미래를 내다보는 식자(識者)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자 주장이다.
한해 중 가장 분주한 3월을 보내고 봄기운이 완연한 4월로 접어들면서 학교들도 점차 안착된 분위기 속에서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힘을 쏟으리라 생각된다. 해마다 이맘때면 새로 구성된 학운위 및 학교 자생단체 임원들로부터 뭔가 자녀가 몸담고 있는 학교를 돕고자 하는 선의의 생각과 행동들이 자칫 불법 학교발전기금 조성으로 비춰져 일부 시민단체의 고발로 이어지고, 일선 교장들은 물론 시·도 교육청 간부진마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였던 것이 그 간의 모습들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아직까지 이런 불미스러운 기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정말 다행스러운 교육계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대신 서울 모 신문이 주관이 되어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공동으로 벌이는 '가난한 학교 돕기'운동이 한창이다.
학교의 업무를 크게 보면 '가르치는 일' 즉 교육과정 운영과 이를 지원하는 관리업무로 나눌 수 있다. '가르치는 일'은 당연히 교단 교사들의 몫이다. 아마 요즘 선생님들은 새로 맡은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는 일부터 시작해 개성도 파악해야 하고 교육의 장(場)인 교실도 아름답게 꾸며야 하고 교무분장에 따른 업무추진 기획도 해야 하기 때문에 고양이 손도 빌리고 싶을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낼 것이다. 반면에 학교운영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맡고 있는 학교장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좋은 교육환경에서 나름대로의 꿈을 키우며 잠재적인 소질을 계발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 일선학교는 학부모님들이 학교에 다니던 70·80년도 학창시절에 비하면 교육환경이 크게 바뀐 것은 사실이다. 교실에는 석탄 난로 대신에 온·냉풍기, 카세트 라디오 대신에 컴퓨터와 멀티비전, 그리고 교무실이나 학년 휴게실에는 시커먼 등사판 대신에 복사기와 플로터가 설치되어 있다. 글로벌 시대에 접어든 요즘 이 정도의 기자재는 모든 학교의 기본 교구로 자리를 잡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교사가 손수 쓰고 만들고 제작하던 교수매체는 교육현장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이 잘 되어야 국가의 미래가 보인다" 이 말은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귀가 닳도록 들어서 식상할 정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에 영달되는 교비는 오히려 줄어든다.
어느 학교나 대동소이하겠지만 교육청에서 배정된 학교 운영비에서 경직성 경비를 제하고 나면 학생들의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서 집행해야 할 교단지원비는 말 그대로 쥐꼬리만큼 남는다. 따라서 교육수요자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여 질 높은 교육활동을 전개하기 위한 학교 나름의 특색사업을 추진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학교환경은 시간이 흐를수록 또 역사가 오래된 학교일수록 낙후되고 침체되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학교들이 멀쩡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학교 속으로 들어가 보면 학교장들이 골머리를 앓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예로 이른 봄 찾아오는 꽃샘추위에도 과중한 전기세가 부담이 되어 기존에 설치된 온·냉풍기를 돌리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학교장들이 적지 않다. 40여 성상을 해맑은 아이들과 생활하다가 은퇴한 필자가 교육수요자인 학부모님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내 자식이 몸담고 있는 학교를 겉만 보지 말고 속도 자세히 살펴보라"고 말이다. 모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난한 학교 돕기'운동이 소기의 성과를 거둬 우리 후대들의 미래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를 기대해본다./김청규 前 인천부마초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