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겨울은 좀 추워야 제 맛이다. 하지만 임진년 새해는 예년에 비해 추위가 좀 유난스럽다. 입춘(立春)이 지나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도 지났는데도 추위는 누그러들 줄 모른다.
긴 동절기 동안 집안에만 갇혀 지내려니 답답하다 못해 좀이 쑤신다. 평생 학습 (leaning up), 즉 '배우는 데는 나이가 없다'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요즘, 새 지식 새 정보를 제 때 섭취하지 못하면 낙오가 되는 세상이다. '안경 낀 흰머리에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거나, 책을 보다가 조는 모습은 노년의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 어느 식자(識者) 말에 자극되어 나흘째, 부평구 청천2동 주민센터 5층에 자리 잡은 e-배움터에서 동영상 제작 및 활용에 대한 실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오후에는 서울에서 혼자 지내는 아들한테 다녀왔다.
필자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큰 딸은 출가하여 남편 직장이 있는 경기 화성지구 동탄 신도시에 거주한 지 어언 4년이 된다. 이제 하나 남은 30대 중반 아들은 대학 졸업 후 서울의 자그마한 벤처기업에 몸담은 지 10년 가까이 된다. 그런데 근자에 손수 창업(創業)하겠다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지 달포 가까이 된다. '소도 언덕이 있으니까 눕는다'는 말처럼 제 딴에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아빠 엄마가 걱정되지 않으니 나이 더 먹기 전에 뭔가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일, 이 참에 저질러 보고 싶었으리라.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은 참으로 요사(妖邪)스럽다. 생각 같아서는 장가를 들어 금쪽 같은 손자를 낳아 안겨줬으면 좋으련만 너나 할 것 없이 요즘 젊은 세대는 생각하는 바가 우리 실버 세대들과는 전혀 판이하다. 그렇다고 자식(子息) 기(氣) 꺾으면서 사는 무지렁이가 될 수도 없고 정말 진퇴양란이다. 그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속담의 참 의미를 새삼 가슴 속 깊이 새긴다.
최근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생들한테 존경받는 스승으로 떠오르고 있는 김난도 교수는 그의 저서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젊은 세대들이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 피는 매화만 되려하지 말고, 늦가을에 피는 국화도 생각해 보라'는 구절이 지금껏 안정(安定) 지향적인 패러다임에 젖은 필자에게 경구(警句)로 다가온다. 서울 광진구청 인근 5층 건물 내, 대여섯 평도 안 되는 협소한 사무실에서 여직원 한 명과 함께 엔터테인먼트(모바일 게임) 개발에 몰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작년 가을에 작고한 애플(Apple)사 창업주 스티브 잡스를 떠 올린다.
"내가 리드 대학(Reed University)에 입학한 후, 6개월 만에 중퇴한 결정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행한 결정 중 가장 잘한 결정이었고, 그가 창업한 애플사에서 쫓겨났을 때, 내가 하는 일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해고당한 후, 그처럼 힘들었던 고통 속에서도 그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제 인생에서 일어났던 최대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술회는 필자의 심금(心琴)을 진하게 울린다. "Stay Hungry. Stay Foolish"(계속 갈망하고 언제나 우직하게 전진하라)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사는 동안 비록 주변 사람들에게 덕(德)은 베풀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害)가 되는 일도 하지 않고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다. '악한 끝은 있어도 선한 끝은 없다'는 성현 공자님 말씀을 되새기면서 어차피 아들이 시작한 일, 좋은 결실을 거두기를 기대해 본다.
"믿는다. 네 도전 정신을. 아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