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신도시/ 반석산 & 오산천 탐방기
'외손주를 귀애하느니 절굿공이를 귀애하지' 라는 말이 있습니다. 외손자는 아무리 귀여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출가한 딸이 시댁 어른보다는 친정부모가 편한지라 첫째에 이어 둘째를 낳은 산후조리를 제 어멈한테 또 하니 말입니다. 안식구가 모처럼 친구 모임에 참가하다는 말에 인천에 귀가한 지 이틀 만에 또 동탄에 내려갔습니다.
외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는 '나루마을' 인근에 있는 반석산 산책로에 들어섰습니다. '반석산' 이라는 지명(地名)은 반송동과 석우동의 두 동네 이름이 합쳐진 이름이랍니다. '동탄' 을 올적마다 가장 부러운 것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반석산과 오산천이 어우러진 산책로입니다. 잘 정비된 산책로를 걸을적 마다 무질서한 계양산 산책로가 떠올라 은근히 부화가 돋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나루마을 사거리에서 정자가 있는 반석산 정상을 지나 노작공원쪽으로 걸었습니다. 노작(露雀)이라는 용어는 일제 강점기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는 등 낭만주의 문학을 선도한 대표적인 시인이자, 신극운동을 이끈 연극인이었던 홍사용 선생의 아호(雅號)입니다.
노작홍사용문학관에 들어가 노작(露雀)의 삶을 살펴 보았습니다. 경기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홍사용은 일본의 침탈로 부친이 속한 군대가 해산하자 백부의 양자로 입적하면서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돌머루)로 이사하였습니다. 그 곳 사숙에서 한학을 공부하다 17세에 휘문의숙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접어듭니다.
1923년 당시 선구적 극단인 토월회에 가입하여 희곡 《김옥균전》을 쓰다가 일제의 검열로 주거 제한조치를 받아 붓을 접습니다. 그 후 미투리에 두루마기 차림으로 전국 곳곳을 방랑하다 폐환으로 별세(48세)합니다. 그의 대표작 '나는 王이로서다 ' 라는 작품에서 보다시피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픔과 정한(情恨)을 표출하여 일제에 항거한 작가라는 생각에 그의 삶의 모습을 보는동안 나도 모르게 엄숙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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