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모임)

[스크랩] `동탄` 신도시/ 반석산 & 오산천 탐방기

길전 2014. 5. 23. 09:11

 '동탄' 신도시/ 반석산 & 오산천 탐방기

 

 '외손주를 귀애하느니 절굿공이를 귀애하지' 라는 말이 있습니다. 외손자는 아무리 귀여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출가한 딸이 시댁 어른보다는 친정부모가 편한지라 첫째에 이어 둘째를 낳은 산후조리를 제 어멈한테 또 하니 말입니다. 안식구가 모처럼 친구 모임에 참가하다는 말에 인천에 귀가한 지 이틀 만에 또 동탄에 내려갔습니다.  

 

 

 

 

 외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는 '나루마을' 인근에 있는 반석산 산책로에 들어섰습니다. '반석산' 이라는 지명(地名)은 반송동과 석우동의 두 동네 이름이 합쳐진 이름이랍니다. '동탄' 을 올적마다 가장 부러운 것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반석산과 오산천이 어우러진 산책로입니다. 잘 정비된 산책로를 걸을적 마다 무질서한 계양산 산책로가 떠올라 은근히 부화가 돋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나루마을 사거에서 정자가 있는 반석산 정상을 지나 노작공원쪽으로 걸었습니다. 노작(露雀)이라는 용어는 일제 강점기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는 등  낭만주의 문학을 선도한  대표적인 시인이자, 신극운동을 이끈 연극인이었홍사용 선생의 아호(雅號)입니다.

 

 

 

 

노작홍사용문학관에 들어가 노작(露雀)의 삶 살펴 보았습니다. 경기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홍사용은  일본의 침탈로 부친이 속한 군대가 해산하자 백부의 양자로 입적하면서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돌머루)로 이사하였습니다.  그 곳 사숙에서 한학을 공부하다 17세에 휘문의숙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접어듭니다.  

 

 

 

 1923년 당시 선구적 극단인 토월회에 가입하여 희곡 《김옥균전》을 쓰다가 일제의 검열로 주거 제한조치를 받아 붓을 접습니다. 그 후 미투리에 두루마기 차림으로 전국 곳곳을 방랑하다 폐환으로 별세(48세)합니다. 그의 대표작 '나는 王로서다 ' 라는 작품에서 보다시피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픔과 정한(情恨)을 표출하여 일제에 항거한 작가라는 생각에 그의 삶의 모습을 보는동안 나도 모르게 엄숙해집니다.

     

*추기:슬라이드 사진을 하나씩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부평시니어기자단
글쓴이 : 기자 김청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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