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철들자 망령 든다’ 는 말이 있다. 요즘 내 몸 상태가 그런가 싶어 은근히 걱정된다. 아침에 눈 떠서 ‘뭘 하겠다’ 고 생각했는데 잠시 후에는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끊었던 신문도 다시 구독하고 솜씨도 없는 글을 적어 컴퓨터 명심일기록에 저장한다. 뿐만 아니라 불편한 다리 더 나빠지지 않으려고 매일 2시간 이상 걷는다. 이 모든 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인간이 겪어야 하는 ‘생로병사’라는 한 과정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다 보니 자연 기상이 늦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떠보니 식탁에 밥상이 차려있는 걸로 보아 안식구는 딸네 집에 간 것이 분명하다. 거실 쇼-파 에는 서너 권의 책이 들어 있는 종이가방이 눈에 띈다. 매일 복용해야 할 약 때문에 입맛은 없지만 억지로 밥을 먹는다. 그리고 나서는 신문을 본다. 제목만 대충 훑어보다가 관심 가는 기사는 숙독한다. 그 다음 하는 일은 스마트 폰의 카-톡을 검색한다. 삼 ·사십 개에 달하는 카-톡 내용을 전부 읽다보면 어느 사이 태양은 머리 위에 와 있다.
오늘은 안식구가 읽은 책을 반납하고 반석산 에코길을 걸을 심산으로 전동 스쿠버를 타고 2km 쯤 떨어진 동탄복합문화센터를 향해 달렸다. 도서관 출입문에 설치된 무인도서 수납함에 책을 집어넣고 스쿠버는 그냥 놔둔 채 우비와 스틱만 챙겨 반석산 친환경 무장애 길로 들어섰다. 적어도 일주에 한 번 이상 걷는 낮 익은 길이다.
전번 까지만 해도 눈에 띄지 않던 서정춘 시인의 《죽편 1-여행》이라는 詩가 적힌 글 판이 보인다. 팔각정 정자가 있는 정상에 오르니 이번에는 정호승 시인의 《리기다소나무》 라는 詩句가 눈에 들어온다.
소나무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고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 사례처럼 숭배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로 집을 지었고 소나무 낙엽을 긁어다 추위와 음식을 장만했고 송홧가루와 솔잎을 넣어 만든 송편을 먹었다. 뿐만이 아니라 종당에는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리기다소나무는 외국에서 시집온 나무로서 요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 품종의 하나다. 반석산 에코 길에서 본 두 편의 글 중, 정상에서 본 정호승 시인의 《리기다소나무》 詩句를 소개하면서 글을 접는다.
리기다 소나무
정호승(1950~)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한 그루 리기다소나무 같았지요.
푸른 리기다소나무 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던 바다의 눈부신 물결 같았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자마자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솔방울이 되길 원해지요
보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솔가지가 되어
가장 부드러운 솔잎이 되길 원했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 비로소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 알았지요.
사랑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