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의 최대 화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칠십 줄에 들어 선 가황 『나훈아』가 아닐 수 없다. 지난 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는 가황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이 흘러나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 모대학 교수는 "장안의 지가를 올린 자칭 지식인보다 광대를 자처하는 예인이 소크라테스에 훨씬 가깝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나훈아』 가수의 KBS 방송국 특별방송은 그렇지 않아도 '고전 읽기' 에 대한 나를 비롯한 다수 독자층의 관심을 up하는데 큰 몫을 했다고 본다.
지난 주 중, 완독한 ‘세르반테스’ 의 명작 돈키호테를 반납하면서 나는 중국 명대 장편소설 ‘서유기’ 와 최근 고전을 매개로 사귀기를 제안하면서 저술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이웅구』작가가 쓴 ‘배움의 공자와 물음의 소크라테스’ 두 권을 빌리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동양의 성현으로 추앙받고 있는 공자는 논어를 통해 우리들과는 너무나 친밀한 인물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고대 아테네 도시국가 번성 시 해성처럼 나타난 서양철학의 토대를 구축한 대 선각자이자 위대한 사상가라는 사실은 웬만한 식자면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배움의 공자와 물음의 소크라테스'을 쓴 작가「이웅구」는 나로서도 정말 생소한 사람이다. 서울에서 중·고교를 마치고 연세大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대기업, 벤처기업, 중국기업, 무역업 등 유목민처럼 다양한 생산직에 종사하다가 늦은 공부를 시작했다고 그는 고백한다.
대학시절 마음에 품었던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다시 실천하자는 마음과 두 아들이 닮고 싶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고 술회한다. 자연스레 공자와 소크라테스를 접하게 되었고 이들이 몸소 실천한 '평생 공부하기'를 따라 하면서 많은 사상가들과 고전을 만나고 있다. 수 년 째, 동·서양 고전강좌를 열어 사람들을 공부하는 행복한 삶으로 이끌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그 길로 유혹하기 위해 저술활동도 시작하였다고 말한다.
'사람은 모방을 통해서 생존능력을 키우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적응해가는 동물' 이라고 작가는 전제한다. 그러면서 공자와 소크라테스는 좋은 모방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모든 면을 소개하지는 않는다. 더 많은 면을 보고자 한다면 논어와 플라톤의 대화편을 통해서 좀 더 직접적으로 만나보기를 권한다. 이 책에서 모방할 점으로 특히 강조하는 것은 3가지이다.
첫째는 끊임없이 ‘배우는 삶(學而時習之)’이다. 공자는 그것을 배움을 좋아하는 삶(不亦說乎)이라 했고, 소크라테스는 ‘캐묻는 삶’이라고 표현했다.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대학교든 대학원이든 최종학력을 마치면 공부를 끝이라고 생각한다. 공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부가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경우 공부를 그 어떤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공부를 했다고 설명한다.
'배움은 나를 성장시킨다. 내가 변하면 나와 관계 맺는 타인도 함께 변하고 그로 인해 나와 타인이 속해 있는 이 세상도 변하다' 면서 이런 즐거움을 어찌 죽을 때까지 그만 둘 수 있는가? '이들을 모방하여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의 공부, 나를 변화시키는 공부를 하자' 고 작가「이웅구」는 설득한다.
두 번째로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內面의 목소리에 귀 기우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느끼기 위해 노력하라‘ 고 한다. 내 안에는 귀로는 들을 수 없지만, 끊임없이 내가 들어주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있다면서 내면과 외면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세 번째는 ‘주인(野生)으로 살아가기’이다.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제안한 삶은 보호(가축)으로서의 삶이 아닌, 비보호(야생)으로서의 삶이 곧 자유와 모험이 넘치는 삶이라고 말한다. '야생의 삶은 누구에게도 복종할 필요가 없다. 다만 신의 뜻, 자연의 법칙에만 복종하면 된다' 야생의 삶에서는 어떤 것도 보장되지 않는다. ‘나의 생존에 필요한 것은 내 스스로 찾아야 하고 누구도 나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지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질시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것이다.
나의 삶은 궁극적으로 내가 책임지는 것이라면서 야생의 삶은 또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살고 있는 방식대로 앞으로도 누군가가 나의 삶을 결정해주고 나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해주기를 바란다면 더 이상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작가는 단언한다.
지금까지 살아 온 나의 삶을 반추해 볼 때, 수긍이 간다. 그래서 나는 교육은 백년대계를 바라보는 교육이어야 하며 미래의 행복한 홀로서기를 위해서는 학습자의 인권 존중교육도 소중하지만, 참고 견디는 단련교육도 더불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가 형제 자녀들! 그리고 지인들의 구독을 기대한다.(끝)
주: '팔불출 명심일기'(2020.10.20) 에 쓴 글, 코 앞으로 다가 온 '설' 을 앞두고 다시 불로그에 띄웁니다.
***크리스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