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思

농사체험 소회

길전 2009. 10. 10. 08:19

 

농사체험 예찬(禮讚)

  언젠가 산행하는 와중에 ‘노후가 즐거우려면 1건(一健) 2처(二妻) 3재(三財) 4사(四事) 5우(五友)에 충실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소(苦笑)를 지은 적이 있지만 하루하루 연륜이 더해갈수록 그때 들은 이야기가 자꾸 반추된다.
건강, 처, 돈, 일, 그리고 친구는 시니어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가장 소중한 덕목들이다. 그 중에서도 인생후반전을 유복하게 지내려면 특히 건강과 일은 생존의 기본 필수사항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노후에 소일거리가 없는 것도 큰 걱정거리다. 필자는 정년퇴임 후, 여유로워진 자유 시간을 소진시키기 위해서 동호인 등산모임에도 쫓아 다녀보고 거주지 인근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해보지만 가슴 한 쪽은 늘 허전하였다.
그런데 땅 한 평 없는 필자에게 대학 친구가 ‘농사일 한 번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평생 호미자루 한 번 잡아 본 적이 없는 필자는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한 농사체험으로 불안하고 허전하던 소위 정서불안 증후군을 털어냈다. 요즘 필자는 하루라도 농장에 가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솟을 것 같아 견디기 힘들다.
오늘 아침에는 선선한 바람 따라 함께 온 가을비가 아파트 창가를 촉촉이 적신다. 감자를 수확한 자리에 모종한 겨울 김장용 배추가 보기 좋게 자라고 있는데, 하늘에서 때를 맞춰 비를 뿌려주시니 너무나 고맙다 못해 황송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비가 오는데 어디를 가느냐?’는 안식구의 말을 등 뒤로 들으며 우비를 바쳐 입고 아파트 단지 자전거 보관대로 나왔다. 밤사이 내린 비로 길은 미끄러웠지만 이른 아침의 공기는 유난히 싱그럽다. 서운동 서울외곽 고속도로 진입로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농장에 도착하니 가을비에 흠뻑 젖은 배추 묘들이 어린 병아리처럼 예쁘고 귀엽게 반긴다.
장장 40여 성상 국가의 동량이 될 인재를 키우는 일에 참여했던 필자이다. ‘마음먹은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從心所欲不踰矩)’는 뒤늦은 나이에 농사일을 시작했지만 사람교육이나 농사일이나 하등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말이 밭(田)이지, 애초에는 논(畓)인 것을 공사장에서 나온 흙으로 복토한 땅이라 비가 조금만 뿌려도 신발에 척척 달라붙고 또 며칠 가물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척박한 토질이지만, 우선 작물 심기 전에 물길부터 내고 밑거름 흠뻑 뿌리고 두 서너 번씩 뒤엎어 손바닥에 물집 생길 정도로 토질 갱신에 힘썼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던가. 필자는 요 근래 주변으로부터 ‘전문 농업인’이라는 닉네임을 듣게 되었다.
뒤늦은 농사체험을 통해서 얻은 소득이 적지 않다. 우선 퇴임 후 일시적으로 나태해졌던 생활 습관이 다시 부지런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인간사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특히 농사란 때가 있어 남보다 먼저 씨를 뿌리고 김을 매주고 적기에 거름을 주어야만 좋은 결실을 얻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은 진리 중에 진리다. 성경말씀에도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지 않던가! 손쉽게 농사지으려는 얄팍한 생각이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충고하고 싶다.
건강관리도 농사체험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식전에 일찍 기상하여 농작물을 돌아보고 와서 먹는 조반은 말 그대로 꿀맛이다. 한낮 땡볕으로 비록 얼굴과 팔뚝은 검게 탔지만, 땀을 쏟고 마시는 탁주의 시원하고 달콤한 맛은 직접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 진미를 알지 모르리라.
농사체험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희열은 언제나 싱그러운 야채와 열매를 접하며 수시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웃과도 나눔으로써 정감을 더욱 돈돈히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닌가!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농업을 나라의 근본(天下之大本)으로 생각하였다. 농사체험을 통해서 선조들의 혜안과 식견을 반추하는 즐거움도 결코 작지 않다. 지난 9월 1일자로 정년이 되어 정든 교정을 떠난 퇴임후배들에게 가능하면 일거다득(一擧多得)의 소득이 있는 농사체험을 권장한다.
김청규/인교연혁신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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