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의 바깥 나들이
"오이도 옥구공원"를 다녀오다.
그 어느 해보다도 유난스럽던 폭염도 처서인 어제(8월 23일)을 고비로 한 풀 꺾이는 것 같스니다. 현직시절 부평관내 이웃학교에서 정분을 쌓았던 옛 동료(일명 오성회원)들이 틈을 내어 지난 달 부분 개통된 수인선 열차를 이용하여 시흥시 정왕동에 자리잡고 있는 오이도외 옥구공원을 다녀왔습니다.
옥구도(玉貴島)는 주변에 돌이 많다고 하여 석도, 석출도, 석을주도, 석옥귀도, 옥귀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구전에 의하면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배를 타고 가다가 이곳에 표류하게 되었는데, 한 어부가 옥(玉)으로 된 귀한 그릇에 물을 담아 바치자. 임금이 깜짝놀라 귀히 여기시고 옥귀도(玉貴島)라 불리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고 합니다.
옥구도는 본래 남쪽의 오이도와 함께 옥귀도(일명 옥귀섬)라고 부르다가 이 곳에 돌이 많으므로 '석옥귀도'라 불렀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옥구도' 로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돌이 마치 줄이 선 형상을 하고 있어서 산 이름을 '돌출산' 마을 이름을 '돌주리' 라고 하였으며 섬 정상부는
서울을 등지고 있다고 하여 '역점섬' 이란 별칭이 붙여지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옥구도 앞 바다는 조선 인조 14년 (1636)에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정왕동 출신 원성모 선생이 두 아들과 함께 청나라 군사와 맞서 항전하다가 순국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1922년에 오이도와 안산시 사이에 방조제가 출조되자 염전으로 변모되었는데, 이 때 염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촌락을 형성하게 되였고 그 뒤 1931년에 육지에 연결되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생활문화권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중에는 일제가 우리 민족혼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설치한 신사터와 예전에 뱃 사람들이 마셨다는 생금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죽율동 주민이 나무를 하러 왔다가 황금닭을 얻어 큰 부자가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20여분 가량 걸어서 정상에 오르니 인천 송도신시가지 를 비롯하여 남동공단, 논현동 소래포구와 시화지구 그리고 안산 대부동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오이도 해양단지에 있는 음식점 '해군본부'에서 해물파전에 막걸리 그리고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귀가 하였습니다. 오늘 하루도 옛날 선생님들 덕분에 무척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크리스탈-
'만남(모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단기 4345주년 개천절 날 동정 (0) | 2012.10.03 |
---|---|
[스크랩] 오성회 가을 나들이/"오봉산과 소래포구 탐방" (0) | 2012.09.27 |
[스크랩] 어르신기자단 교육수료 (0) | 2012.05.30 |
[스크랩] 부평愛/ 두번째 시리즈 `청춘극장` (0) | 2012.05.21 |
[스크랩] 2012, 노인 일자리 사업단 야유회 동정 (0) | 2012.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