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Monster) 학부모와 ‘치맛바람’
김청규 인교연혁신포럼대표
요즘 일본에서는 ‘학교는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요구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성향의 학부모를 지칭하는 ‘몬스터(Monster) 학부모’라는 용어가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학교나 교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흡사 괴물 같은 특징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 조어는 특히 1960년서부터 1970년대에 태어난 신세대 주부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친절하고 타인을 배려하기로 소문난 일본에서 이런 증후군이 사회이슈로 제기되어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 경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시절, 자녀의 학교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온갖 추문을 뿌렸던 일명 ‘치맛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치맛바람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가 처음에는 뱃속의 뭣까지 뽑아줄 것처럼 하다가도 아이에게 불이익이나 손해가 돌아오면 금세 안면을 바꾼다는 사실이다. 즉, 내 자식 손해 보는 일은 절대 못 참는다는 것이다. ‘치맛바람’이든 ‘몬스터 학부모’든 이런 현상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교사·학부모 간의 소통부족으로 인한 불신으로 치부하지만, 교직에 몸담았던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으로 학부모의 학력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교직을 우러러 보지 않고 단순한 ‘교육 서비스’ 제공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사회저변에 팽배하고 있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교직을 노동직이라고 주장해온 일부 교원들의 자충수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아무튼 일본의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최근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립 초·중학교의 9%, 고교의 15%가 부당한 학부모 요구로 교사 세 명 중 한 명은 아예 소송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또한 ‘학교문제해결지원센터’를 신설해 학부모와 교사 간 갈등을 학교가 아닌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직접 담당하기로 했으며, 교사들에게 학부모 대응매뉴얼을 만들어 제공하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선 교육현장에서 교장·교사에게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부모들이 증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할 게 아니라 우리도 성실한 다수의 교사들이 마음 놓고 교단에서 교육행위에 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하지 않을까.
우스갯소리로 요즘 가정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 사람은 ‘조부모’가 아니라 ‘아이’다. 오죽하면 ‘3번은 잘 있거라, 6번은 간다’는 신조어가 생겼을까. 학교공부 중에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자기 일은 자기가 스스로 해결하는 ‘근면성’과 더불어 타인을 배려하는 ‘인성’은 더욱 소중한 덕목이자 교육요체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학부모들은 먼 숲보다는 가까이에 있는 나무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자녀의 고칠 점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서도 막상 자녀의 단점을 지적하면 열이면 아홉은 벌레 씹은 표정을 짓는 것이 부모의 심리다. 그렇다고 포퓰리즘에 사로잡혀 학부모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지 않는 교사는 올바른 교육행위자라고 볼 수가 없다. 오늘날 공교육을 피폐하게 만든 단초가 이런 작은 데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교사시절 인천 서구에 있는 모 학교에서 3학년을 담임하였을 때 경험담 하나를 소개한다. 매일 등교시간이면 아이의 가방을 들어다 주는 어머니가 눈에 띄었다. 아이는 학년 초 시행된 진단평가 결과 성적이 학년에서 가장 뛰어났다. 그리고 그 아이의 부모는 동학년 협의회가 있는 날이면 간식을 학교로 배달시키는 열성적인 학부모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과보호 속에서 성장한 탓으로 자기만 알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물건을 소중히 생각하는 태도 등이 결여되어 있었다.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꾸겨서 버리는 도화지가 적지 않음을 발견하고 한 번 연필을 대면 끝까지 마무리할 것을 종용했지만 고질화한 습관이 이내 고쳐질 리 없었다.
약한 교육적 처방으로는 그릇된 행동이 교정되지 않을 것 같아 1학기 통지표에 1, 2학년에서는 받아본 적이 없는 ‘미’를 주었다. 본인은 물론 학부모도 상당히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2학기에는 학부모가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미술시간에 ‘스케치 북’을 뜯어 버리는 일만은 하지 않았다. 지금 그 아이는 성인이 되어 분명 국가가 요구하는 유용한 인재가 되어 있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