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思

[스크랩]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길전 2015. 8. 2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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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동생 박사학위 취득를 축하하며...





 지난 금요일(8월21일) 충남 천안에 다녀왔습니다. 이 날 호서대 캠퍼스에서는 제31회 후기 학위수여식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노무사 일을 하고 있는 막내동생이 박사학위를 수여받았습니다. 요즘 흔하것이 '박사' 라고 하지만, 아무튼 50줄에 들어선 막내동생이 박사학위증을 받는 모습을 보니 기쁨니다. 하지만 지난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무척 시리고 아팠습니다.



 경기 오지 가평에서 본가가 있는 인천으로 전입한 것이 1977년입니다. 지방근무 5년 이내에 대다수 동기들은 인천으로 귀향하여 근무하고 있었지만 나만은 그렇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P교장은 다른 선생님들은 2~3년만에 내보내면서도 유독 나만은 놓아주지를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며 나를 붙잡던 P교장님의 선견지명이 고맙기 이를데 없습니다. 인천 전입 후에 직할시로 승격되는 바람에 정년퇴임까지 인천를 벗어나지 않는 홍복을 누렸습니다. 



 5남매 맏이인 나에게는 고 3년생인 막내동생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막내동생의 진의도 생각지 않고 서울교대에 진학시켰습니다. 마침 그 해는 박정희대통령의 시해사건이 터져 시국이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성실하게 공부하여 서울시내학교 교단에서 안정된 생활을 할 것으로 생각했던 동생이 뜬금없이 자퇴를 하였습니다. 나는 물론 어머니께서도 무척 당황스러워 하셨습니다. 그 이듬해 서울시립대 법학과에 다시 들어간 동생은 등록금 수납때만 되면 형 면전에서 물을 훔치곤 하였습니다.



왜 좋은 낯으로 등록금을 주질 못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팔불출입니다.  졸업과 동시에 두 번에 걸쳐 사법시험에 도전하였으나 모두 2차에서 낙방하였습니다. 충분히 여건을 마련해 주지 못한 당연한 사필귀정인지 모릅니다. 막내 동생은 하는 수 없이 좌절감을 안고 군대에 입대하였습니다. 제대 후에는 대한생명보험사 영업직원으로부터 시작하여 부동산 중개업에 일시 몸을 담았다가 40대 후반에야 비로서 노무사 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안양, 안산, 평택에 노무사 사무실를 개설하였다가 결국은 천안에 뿌리를 박았습니다.



'모든 일은 오직 마음에 달렸다'(一切唯心造)는 불가의 고사성어가 생각납니다. 젊은 시절 이루지 못했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지천명(知天命)이 지난 늦은 나이(55세)에 성취한 동생이 새삼 우러러 보입니다.

 "수고했다. 그리고 장하다. 대현 아범!!"

 "고맙습니다, 그 간 형님 저 때문에 마음고생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세요!!"

  오랫만에 5남매가 한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정담을 나눴습니다. 아마도 천상의 부모님께서도 내려다 보시면서 무척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크리스탈***

     


      

 

출처 : 부평시니어기자단
글쓴이 : 기자 김청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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