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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작 홍사용/"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길전 2015. 11. 24. 22:44

노작 洪思容(1900~1947)의 대표 시(詩)

"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11월 초, 고종사촌 형이 세상을 떴습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19일)에는 두 살 적은 사촌 동생이 또 소천하였습니다.  토요일(21일) 아침 인천대공원 두리회 조찬모임에 참석하였다가 장지(葬地)인 안산 단원구 화정리 고주물(본래는 꽃우물) 외가 선산에서의 외사촌동생 안장식를 지켜보았습니다.

 다음날 일요일 식전에는 민주화의 대부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민하였다는 뉴스를 또 접했습니다. 그 어떤 위인도 세월 앞에는 어쩔 도리가 없나 봅니다. 다만 조금 순서가 다를뿐이라는 사실에 하루하루를 더 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봅니다.  


 일요일 아침나절 아내가 '아들에게 겨울 옷을 갖다주었으면 좋겠다' 는 이야기에 분당 풍림오피스텔에 들렸다가 내친 김에 동탄 딸네 집으로 내달렸습니다.

  한동안 못 보면 보고 싶어지는 것이 바로 외손주들입니다.

그동안 동생을 무척이나 시샘하던「하경」이는 이제 의젓한 누나 모습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18개월 되는「선우」는 남자다운 행동을 합니다.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다음 날, 눈을 뜨기가 무섭게 최근 새로 조성한 반석산 에코벨트로 아침운동 조킹을 나갔습니다. 오늘은 화성시 향토유적지 제14호로 지정된 노작 홍사용 문학관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노작 洪思容(1900~1947)은 근·현대 문학의 뛰어난 시인으로  신문학 초기 동인지 「백조」를 발간하였으며 대표작으로는 「나는 왕이로소다 」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한 작가입니다. 홍사용 묘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하고  시비의 글을 옮겨 적었습니다.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다. 가장 어여쁜 아들, 난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

는... 



"맨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처음으로 어머니께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 하는 그 소리였지마는, 그것은 '으아!' 하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님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님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날에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한창참바쁘게 오고 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도 아무 대답도 없이 속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발가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치며 '으아!'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방인데요

으스름 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 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섦게 울어 버렸소이다. 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는 조으실 때에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의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빰에 떨어질 때이면, 왕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열한 살 먹던 해 정월 열나흔날 밤, 맨재더미로 그림자를 보러 깄을 때인데요, 명(命)이나 긴가 짜른가 보라고

왕의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럽웁게 놀리더이다. 모가지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뭇꾼의 산타령을 따라가다가 건넛산 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꾼의 그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달우물로 가자고  지름길로 들어서면은 찔레나무 가시덤불에서 처량히 우눈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

소이다.

그래 철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쫓아가다가 , 돌뿌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아, 그때부터 눔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 모르게 속 깊이 소리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우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烽火) 둑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에,

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강중련(瓨中連) 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 장군 바위에서 날마다 지고 가는 뜬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리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나라로소이다.  

 [백조 3호. 1923.9]


출처 : 경인두리회
글쓴이 : 김청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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