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모임)

[스크랩] 인천사의 발상지 문학산 탐방소회

길전 2016. 7. 21. 23:53

인천사의 발상지  문학산 탐방소회

"너무 기대가 컸나?"



매월 세째 목요일은 북구 자율장학권에서 퇴임전 함께 근무한 지인들이 만남을 갖는 날이다. 성(姓)이 다른 5명이 만남을 갖는다고 五姓」라는 모임 명칭이 붙었다. 하지만 지금은 회원이 늘어 8명이나 된다. 이 달(7월) 모임은 '인천지하철 1호선  선학역 11시' 라는 문자를 받았다. 문학산 둘레길 걷기가 분명하다.


 인천이 개항(1833년)하기 전까지는 문학산은 인천사의 발상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주몽)의 첫 아들 유리태자가 북부여에서 내려오자 둘째부인 소서노두 아들(비루 & 온조)과 함께 남하하여 미추홀에 도읍을 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인천(부평) 올맨으로서 문학산은 수도 없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인천의 성지인 문학산 정상은 언감생심 감히 근접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5년 10월 15일 '인천시민의날' 드디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문학산 정상을 꼭 밟고 싶었다. 실은 지난 달 모임 때 꼭 밟고 싶었으나 시간이 모자라 문학산 정상 부근까지 갔다가 되돌아서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 모임에는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에 아침 일찍 서둘러서 아예 집(삼산1동)에서 문학동을 경유하는 111-2번 버스를 탔다. 그리고 학익동 백학초교 앞에서 하차하여 문학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고 했던가!


얼마 전, 인천여성가족재단에서 개최된 愛仁 토크 콘서트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 인천시정의 수장인 Y장은 문학산이 인천 시민의 품으로 돌아 온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오늘 한낮의 폭염을 마다하지 않고 땀흘리며 올라간 문학산 정상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게 내 시야에 비쳐졌다.

 

우선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랐음에도 전혀 손을 본 흔적이 없어보인다. 게시된 자료들의 사진이며 글씨들도 이미탈색되어 있었다. 전시관은 커녕 생리적인 현상인 용변을 볼만한 화장실도 보이지 않는다. 인구 3백만 도시의 기념물 1호라고 하기에 너무나 부끄럽다 못해 울분마저 치민다. 


인천시는 물론 관할구청의 철저한 관리와  더불어 빠른 시일내의 부속시설의 조성을 기대해본다. 


                                                             

                                        


      


    


  


 

 


출처 : 경인두리회
글쓴이 : 김청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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