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 묘와 사당(至德祠) 탐방(동영상)
인천교육삼락회 (제18회) 고적답사 동정
"옛 것을 익혀서 새 것을 안다'는 의미의 溫故知新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고희를 지나 망팔을 바라보는 나이에 칠십 평생 뿌리박고 살아 온 부평사와 더불어 수도권에 흩어져 있는 선조들이 남긴 유적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정말 솔솔하다.
그 어느 해보다 유난스럽던 찜통더위가 힘을 잃은 8월 18일(금) 인천교육삼락회 고적답사부 동아리회원들의
열 여덟번 째 고적답사에 본인도 동행하였다. 장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산 65번-42에 위치하고 있는 양녕대군 묘와 사당(至德祠: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호)이다.
●●양녕대군 묘와 사당/지덕사(至德祠)에 관하여...
양녕대군의 어릴 때 이름은 이제(李褆)이다. 태종2년(1402) 원자로 봉해졌으며 1404년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세자로 책봉된 후 학문에 게으르고 무절제하여 부왕 태종으로부터 자주 질책을 받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방종이 더욱 심해져 세자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 1417년에는 태종이 아무도 모르게 보관하라고 준 왕친록을 열어보므으로서 더 큰 불신을 받게 되었으며 전충주 곽선의 첩을 취한 사실도 밝혀졌다. 태종은 수차례에 걸쳐 인군(仁君)으로서의 자질과 덕망을 권하고 벌을 주기도 했지만 끝내 이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결국 1418년 5월 유정현 등의 청원으로 폐위되어 동생인 충녕대군(忠寧大君:뒤의 世宗)에게 왕세자의 지위를 물려주게 되었다. 그 후, 풍류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으며, 여러 차례 탄액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의 배려로 무사했다. 이 번 지덕사(至德祠) 탐방을 통해서 사냥과 호색에 빠져 학문을 멀리한 그가 우리나라 역사상 전후무후한 시와 글씨를 남겼다는 사실이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마도 자유분망하게 살고픈 마음에서 일부러 아우 창녕대군(세종)에게 왕좌를 물러준 것은 아닐까!!
이어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인 효령대군 묘와 사당(淸權祠:서초구 방배동 산190-1번지) 답사가 이어졌으나 부평문화원에서 있을 부평토굴 컨텐츠 개발을 위한 어르신 문화강좌(오후 2시)때문에 동행하지 못햇다. 제 19회 고적답사는 2017년 9월 29일(5주째 금요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 위치한 여운형 생가 및 기념관 탐방이다. 고적답사에 참여할 회원은 1차 모임장소인 1호선 용산전철역 2층 대합실로 09:50까지 나오면 된다.
(시간 엄수:용문행 10:02분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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