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답사 동아리 제25차 고적답사 동정
연산군 묘(사적제362호) & 정의공주묘(유형문화재 제50호)
제25차 인천교육삼락회 고적답사활동이 3월28일(수) 실시되었습니다. 이 번 답사는 서울특별시 방학동에 위치한 연산군 묘(사적제362호) 와 정의공주 묘(유형문화재 제50호)입니다.
경인지하철 1호선역 신설동역에서 2017년 9월에 새로 개통한 무인 경천철 북한산 우이신설선으로 환승하였습니다. 인천경전철 2호선 경전철보다 운행 중 소음이 더 났습니다. 마지막 종착역인 북한산우이역 1번 출구에서 고적답사 마니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거리인 연산군 묘와 정의공주 묘에 도착하였습니다.
먼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량효공 안맹담(良孝公 安盟聃)과 정의(貞懿)공주 묘역을 둘러보았습니다. 부왕인 세종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정의공주와 안맹담은 부부로서 금술이 매우 좋아 세종이 한강 한가운데 있는 저자도(楮子島)와 낙천정(樂天亭)을 하사하였다고 합니다. 또 정의공주는 총명하고 지혜로워서 세종의 한글 창제에 도움을 준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고 박춘석 고적답사 동아리회장은 설명합니다.
연산군은 9대 임금 성종과 윤기무의 딸 폐비윤씨 사이에서 태어나 7살 나이에 세자에 책봉되어 19세에 조선왕조 제 10대 임금이 된 인물입니다. 즉위 초에는 퇴폐풍조와 부패상을 척결하는 등 귀감이 되는 일을 많이 한 성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생모 윤씨의 폐출 경위를 알게 된 연산군은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게 되고 무오사화, 갑자사회를 통하여 크나 큰 옥사와 많은 선비들을 죽였으며 계속되는 사치와 국가재정 탕진으로 종당에는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 교동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병사한 임금입니다.
연산군은 유배지인 교동도에 안장되었다가 연산군 부인 폐비 신씨가 중종에게 이장해 줄것을 간곡히 요청하여 1513년 오늘날의 도봉구 방학동에 이장되었습니다. 비공개로 운영되어 오다가 2006년부터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공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연산군 묘원에는 재실을 비롯하여 수령 550년 되는 은행나무 그리고 정원과 지금도 마실수 있는 약수가 나오고 있습니다. ***크리스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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