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LAN 線) 친구' 는 넘쳐나는데...
나의 하루 일과는 꼭두새벽에 아파트 20층 승강기 출입문 앞에 놓여있는 신문을 집어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좌변기에 앉아 대개는 신문 첫 장부터 차례대로 훑어보지만 가장 눈여겨보는 지면은 아무래도 오피니언 글과 사설 부분이다. 오늘(2019. 1. 15.) 아침 신문에서는 ‘행복은 접속사’ 라는 칼럼(신예리/JTBC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앵커)에 시선이 꽂힌다.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글의 시작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행복하길 빈다’는 덕담, 많이들 주고받으셨을 것이다.
* 글의 핵심
- 행복은 물질이나 신앙, 또는 건강 보다는 가족, 친구, 연인 등과 같은 끈끈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
재하기 때문에 사람은 혼자서는 행복할 수는 없다
- 현재는 ‘초연결(hyperconnectivity)사회‘ 라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친구는 넘쳐나는데 실
제 로 얼굴을 마주하고 마음을 나눌 진짜 친구는 갈수록 줄어 간다’
- 랜선(Lan線)을 통해 하루 수백, 수천, 아니 때로는 수만 명과 연결되어 소통하지만 ‘풍요 속에 빈
곤’ 이랄까. 되레 외로움은 점점 커지고 있다.
* 글의 결론
이것은 작금 세태가 혹시 받을지 모를 상처가 두려워 진진한 관계 맺기를 꺼리는 이들이 많아진 탓에
언제 연락이 끊겨도 딱히 섭섭해 하지 않을 얕고 넓은 인맥 쌓기에 연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
로는 두루뭉수리로 행복을 비는 대신 부디 좋은 관계 맺길 바란다는 새해 인사를 건네 볼까? ' 한
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이 있다. 송년모임 자리에서 절친으로 여겼던 동기로부터 무안을 당했다. 물론 나에게도 허물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후배들이 있는 자리라 그렇게 까지 심한 무안을 줘야 하는지?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했다. 평소 아무리 친분이 두텁다 하더라도 한순간에 우정에 금이 갈 수 있음을 이 번 기회에 절실히 느꼈다. 언젠가 어느 변호사의 특강에서 '善하게 살기보다는 法대로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경구가 뜬금없이 솟구친다. 술자리에서 만난 친한 사람은 주우(酒友)라 하고 또 얼굴만 알고 지내는 사람은 면우(面友)라고 호칭하며, 진정한 벗(친구)은 내가 정말 힘들 때 바위처럼 굳건히 서서 말없이 도와주는 사람이며 그런 벗과의 사귐을 석교(石交)라 한다는 사실을 요즘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과연 나에게 기쁨과 슬픔을 진솔하게 함께 나눌 다시 말해 석교(石交)를 나눌 수 있는 참된 벗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겠는가!!
오늘 신문 칼럼에서 본 "랜선(Lan 線) 친구’ 넘쳐나는데 진짜 친구는 줄어든 세태 쓸쓸, 새해엔 진정한 관계 맺기 위해 ‘상처받을 용기’ 내 보길" 두 구절에서 그 간 가슴에 무겁게 담아두었던 암덩어리를 내려놓는다. -크리스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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