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답사

녹두꽃 서울 종로에 다시 피다.

길전 2019. 5. 8. 04:18

녹두꽃 서울 종로에 다시 피다.

종로 전옥서(典獄署) 전봉준장군 동상  




'몸이 냥이면 눈이 구만냥'이란 말이 다. 인체에서 눈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게다. 종심(從心)을 지나면서 좋지 못한 습관 하나가 붙었다. 나이 들면 잠이 적어진다더니, 새벽 두·서너시가 되면 절로 잠이 깬다. 그때부터 창밖이 훤이 밝아올 때까지 족히 서너시간은 컴프터 자판기와 씨름한다. 그러다 보니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이제는 눈이 침침하다 못해 이따금 오른쪽 안구가 쿡쿡대는 증상마저 나타난다.


 웬만해서는 병원에 가지 않는 팔불출이지만,  그냥 두었다가는 큰 고생할 것 같다는 생각에 주변에 백내장 수술 을 한 지인들의 이야기를 수소문 해 보았다. 그 중에서 금빛봉사단 동아리활동으로 가깝게 지내는 교대 후배 소개로 서울 종로 S안과에서 지난 4월 19일 우선 우측 눈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오늘(4월 24일)은 네번째 안과 방문이다. 29일은 남은 한 쪽(좌측) 눈 수술날자가 잡혔다. 검진을 끝내고 시간이 남아 모처럼 종로거리를 걸었다.


   종각역 6번출구 옆 현재의 영풍빌딩 자리는 상민(常民)들의 감옥인 전옥서)典獄署가  있던 자리이다. '녹두꽃 다시 피다' 라고 쓴 현수막이 시야에 들어 온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마침   '전봉준 장군 순국123주년이 되는 날이다.  표석에는 전봉준(全琫準) 장군의 이력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동학농민군의 함성은 1894년 이 강산을 뒤덮었다. 녹두장군전봉준이 지휘한 동학농민군은 부패한 별슬아치를 몰아내고 패정을 바로잡기 위해봉기하였다. 농민 자치기구인 집강소에서 개혁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이 침략음모를 꾸미자 이를 몰아내려고 전면 재봉기하였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1855~1895)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이 주력인 진압군에게  패배한 뒤 서울 전옥서에 갇혔다. 그리고 권설재판소에서 사형 판결을 내린 다음날인 1895년 4월 24일 새벽 2시에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 등 동지들과 함께 교수형을 받았다.  이제 순국 123주년을 맞이하여, 국민 성금을 모우고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종로 네거리 전옥서 터에 녹두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동상으로 세운 것이다. 고적답사에 관심을 갖다보니 생각지도 않은 행운도 가끔  있나보다. ***크리스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