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인천교육삼락회 고적답사
상록수 『최용신기념관』 과 사육신 『김문기』 유적
인천교육삼락회 고적답사 동아리 회원(회장, 박춘식)들의 서흔 일곱번째 고적 답사가 2019년 2월 20일(수) 실시되었다. 금번 답사는 경기 안산 상록수구 상록공원내에 자리잡고 있는 최용신기념관 그리고 단원구 화정동의 사육신 김문기 유적지였다.
'샘골' 사람들이 최용신을 말하다.
(사진①) 최용신기념관 앞에서 인증샷
( 사진②) 최용신 묘소와 약혼자 김학준의 묘(오른쪽)
안산시 전철역 상록수역은 심훈이 쓴 상록수의 주인공 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최용신 선생의 활동지역이다. 일제 강점기 문맹률 75%였던 시절 1930년 10월에 신교육을 받은 최용신이 낙후된 마을인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사리 샘물골(泉谷) 강습소에 와서 농촌운동을 펼쳤다. 약 2년여 이곳에서 정열을 쏟다가 1934년일본 고베여자신학교에 유학하게 되었는데, 4개월여 만에 병을 얻어 그 해 9월에 다시 샘물고로 들어와 마지막 활동에 전념하다 1935년 1월 운명하고 만다.
고향이 원산이었던 최용신 선생은 병을 얻은 후에도 귀향하지 않고 천곡리로 돌아왔다가 운명하면서 샘골 강습소의 종소리가 들리는 곳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주민들과 인근의 유지들은 당시 25세로 YWCA에서 파견했던 연약한 처녀교사의 죽음을 애도하여 사회장으로 장례응 치뤘는데, 참여한 사람들이 무려 1000명이 넘었다. 당시 심훈은 자신의 연재소설(직녀성) 옆에 실린 기사를 보고, 이 곳에 찾아와 사실전후를 취재한 끝에 계몽소설 공모전 작품으로 '상록수'를 집필하였다.
사육신 김문기의 유적, 오정각(五旌閣)과 고송정(古松亭)
(사진③) 古松亭(탄옹고지: '숯을 구으며 숨어살면서 영월(단종능)을 바라봤다')
(사진④) 금녕김씨 정려각(김문기 4대가 모셔진 정각
조선 세조2년(1456) 단종복위의 모의에 참여하였다가 실패하여 사육신과 함께 참형을 당한 충의공 김문기와 공의 아들, 현석의 충신 정문과 孫, 충규, 曾孫 경남 , 현손 약전의 효자정문이 봉안되어 있는 안산시 단원구 오정각은 예전에는 화정동(花井洞:꽃우물)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이 곳은 나의 외가(금녕김씨:외조부 金世袿)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육신 김문기는 내 어머니의 선대 고조부 쯤 되는 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본래 사육신은 성삼문, 박팽년, 이개, 유성원, 유응부, 하위지, 등 여섯 분이었으나 정조15년에 단종을 위해 충성을 다했던 신하들에게 『御定配食錄』(홍문관에 명하여 편찬된 국가적인 의전)을 편찬하면서 계유옥사 때 死絶한 이조판서 閔伸과 병조판서 趙克寬과 더불어 金文起에게 『三重臣』의 칭호가 내려져 사육신의 한사람으로 봉해져 현재 서울 노량진 인근 사육신 공원내에 가묘가 있다.
최용신기념관 & 김문기 유적 답사 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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