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모임)

자전에세이《삶의 끝자락에서》를 읽고서/2022.3.15.(화)

길전 2022. 3. 15. 18:02

싸레기 눈이 휘날리던 2월 초, 정오 무렵이라고 생각된다. 핸드폰 전화가 와서 안식구 전화려니 하고 무심코 받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귀에 익은 박ㅇㅇ 전 인천광역시 계양구청장님 목소리다.

 

구청장님, 웬 일이세요? 전화를 다 주시고...”

방금 동탄에 거주하는 둘째 딸네 집에 왔어요, 이왕 온 김에 김교장 얼굴 보고 갈려고 합니다.”

저도 구청장님 뵙고 싶었는데, 잘됐습니다.”

잠간 만요, 딸에게 전화 바꾸겠습니다

제집 찾아오시기 어려우실텐데, 교장님 댁 주소 알려주시면 제가 아버지 모시고 가겠습니다

아 그러면 잘 됐네요!

잠시 후, 박구청장님이 탄 자가용차가 도착했다. 안식구가 집에 없어 가까운 서점 커피-룸으로 안내하였다. 동탄에 이주 후, 코로나 탓도 있지만 그간 2년여 만나지 못했으니 반갑기 그지없다. 박구청장님과의 첫 만남은 정년퇴임(2006.9), 계양산 등산동아리 금사회(金師會)에 참여하면서 부터이다. 등산 모임자체가 은퇴한 교원들로 구성되었으나 박구청장님은 특별회원인 셈이다.

 

동탄 따님 댁에 오게 된 것도 사실은 근자 몸소 발간한 자전 에세이집을 내게 손수 전해주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 같아서는 근사한 음식점에 모시고 가서 식사대접을 하고픈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이미 따님 댁에서 점심를 했다고 하기에 아메리카 커피를 마시면서 그간의 쌓였던 회포를 나눴다.

박구청장님이 준 자전에세이집 삶의 끝자락에서 -고국 찾고, 고향 떠나 희망의 인천으로 -흙과 더불어 틴-에이지의 초상-청운의 꿈을 펴다. -비범의 인연과 소중한 경험들 -험난한 선거 공직자의 길 -황혼의 기대와 여망 등 모두 여섯(6) 장 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에서 출생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8.15 광복과 더불어 귀국, 6세 때 인천으로의 전입하여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부친을 도와 농사일을 했던 이야기며 초등 동기들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 독학으로 중·고교 과정을 이수, 예나 지금이나 일류라고 회자되는 Y대 정치외교학과 학사 및 석사코스를 오로지 장학금 수혜로 마친 글을 읽을 때는 박구청장님 만사성 학습결기에 절로 머리가 숙어진다.

어디 이뿐인가! 군부독재시절 첫 근무지인 신설교 아주대학교 학생과장 직분으로 봉직하면서 학생 보호와 면학분위기 조성에 힘썼다. 또한 해외여행 자유화에 따른 홈스테이 프로그램과 민간외교 차원에서의 국가 간 친선교류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쏟으셨다. 또한 우리나라 정치도 문민화 되면서 시행된 지방자치화는 박구청장님에게는 희망이자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신념으로 3번 도전 끝에 인천광역시 계양구청장에 당선되어 인천의 진산 계양산 둘레길 조성 및 계양산성 발굴, 인천 3·1만세운동의 발상지 황어장터 기념관 조성을 통하여 지역 역사 문화 창달에 큰 자취를 남기셨다. 현재 미수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계양장학회운영과 인천의 진산 계양산 지키기 위한 땅 한 평사기 운동본부대표로서 내 고장 계양 사랑() 운동에 자나 깨나 열심이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도 있다. 한 인간의 생애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전 에세이는 큰 가치가 있다. 자전 에세이를 통해서 비로서 지인  박ㅇㅇ계양구청장님의 만사성 학습열정과 계양구에 대한 지극한 향토애를 깨닫게 되었다. 정말 박ㅇㅇ구청장님은 계양구의 큰 어른신이다. 남은 삶 더욱 강건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갈구하면서 자전에세이삶의 끝자락에서》독회 소회를 접는다. 구청장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크리스탈.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