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思

촌지(寸志) 소회

길전 2009. 5. 12. 10:23

     

 

 

 촌지(寸志)에 얽힌 에피소드/중부일보 2009.5.12.게재


 봄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니, 온 산하가 순한 연녹색으로 바뀌어 모처럼의 주말 산행이 정말 상큼할 것 같다.
요즘 일본에서는 ‘학교는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요구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가족 이기주의 성향의 학부모를 지칭하는 ‘몬스터 패런츠(Monster Parenys)’라는 용어가 한창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친절하고 타인을 배려하기로 소문 난 일본 여성(학부모)들 때문에 일선학교 교사들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 국무총리실 산하기구인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최근 전국 학부모를 대상으로 ‘촌지’ 의식조사를 실시한바 있고, 이를 토대로 소위 물 좋은 지역인 분당과 강남지역 학교에서 교사가 윤리에 어긋나는 금품 수수행위를 하였는지를 집중 감찰하였다는 기사를 접하였다.
이 세상에 존속되는 수많은 직업 중에서 교직만큼 适떳??덜 물들고 투명한 직종이 과연 있을까? 물론 타 공무원에 비해 교원숫자가 많다 보니 개중에는 맑은 청정수를 흐리게 하는 미꾸라지 같은 몰염치 교사도 더러 있으리라 사료된다. 하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단골메뉴로 교직사회가 온통 썩은 것처럼 오도(誤導)하는 행정당국과 언론의 태도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촌지(寸志)란?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선물이란’ 뜻으로, 우리 선조들은 학동이 책 한 권을 떼면 ‘책거리’ 또는 ‘책례’로 음식이나 곡식 또는 가금(家禽)을 훈장에게 대접하는 미풍양속이 있었다.
이런 풍속이 바뀌어 언제부터 ‘촌지’가 통념화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요는 사제 간에 주고받는 정성과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학교교육을 멍들게 하는 대가성 촌지문화는 철저히 배격함이 너무나 지당하다.
팔불출 같은 이야기지만 필자는 교단교사시절 ‘페스탈로치 선생’이라는 닉네임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재건축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벽돌공장터에 주공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한 80년대 초, 5학년 담임 때의 이야기다. 어수선하던 학년 초가 지나고 학습 분위기가 안착되는 5월 초쯤으로 생각된다. 수업이 끝나 청소하던 아이들마저 귀가하여 적막하기 이룰 데 없는 교실에서 학급잡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출입문 노크소리와 더불어 안개꽃 한 다발을 든 자모가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선생님 안녕 하세요. ○○ 어머니예요.”
“아 그러십니까?”
맨 앞줄에 늘 조신하게 앉아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아 얼굴 모습이 떠올랐다. 봄 소풍을 다녀온 다음 날, 미술시간에 그리기를 했는데, 친구들과 둘러앉아 오락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마침 모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미술전 공모 출원 협조요청이 있어 그 아이의 그림을 제출하였는데 이 그림이 ‘특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진작 찾아뵈어야 하는 건데.”
“원 별 말씀을, ○○가 큰 상을 받아 담임인 저로서도 영광입니다.”
“선생님께 저녁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이거 약소합니다만” 하면서 핸드백에서 흰 봉투를 꺼내 내민다.
“어머니의 고마운 뜻은 충분히 알겠습니다만, 죄송합니다.”
정색을 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게 마련이다. 이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허물없이 지내는 같은 학년 후배 여선생이 이상야릇한 웃음을 띠며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선배님 보고 학교 선생님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셔요?”
“글쎄! ‘찐빵’이라고 하지 않을까.”
“찐빵이요! 왜 하필 ‘찐빵’이죠?”
“고교시절 학반 친구들이 키가 작다고 붙어준 별명이지….”
“재밌네요. 그런데 틀렸어요!”
“그럼 뭘까?”
“정말 모르셔요. 페스탈로치래요!”
“왜?”
“그거야 선배님이 더 잘 아실 텐데요.”
이듬해 봄, 새 학년이 되어 3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의 어머니가 종이 가방 하나를 문 앞에 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한다. 포장지를 뜯어보니 손수 뜨개질한 남방 조끼였다. 작은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 ‘선생님 진실로 존경합니다. ○○ 모(母) 드림.’
촌지 기사로 마음 착잡한 선생님들에게 메일로 받은 글 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는다.
“세상에 실망할 수는 있지만,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온갖 부조리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웃을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김청규/인교연혁신포럼 대표

'세상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사상담소회/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0) 2009.07.18
젊게 사는 법  (0) 2009.06.16
새 학년도를 맞는 소회  (0) 2009.03.03
이혼을 생각하는 커플들에게!  (0) 2009.02.24
새 해에 버려야 할 구습  (0) 2009.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