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방법원에서 '가사' 상담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어언 1년이 된다. 말이 좋아 '가사' 상담이지 사실은 이혼을 결심한 커플들에게 협의 이혼 절차와 더불어 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부에게는 친권, 양육권, 면접권등을 원만하게 처리토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담을 하고난 후, 웬지 모르게 늘 마음이 답답하고 편치않다. 상담기술이 부족한 때문이리라. 그래서 협의 이혼을 하러오는 커플들에게 三思而後行할 수 있는 이야기 자료를 만들어 보았다.
하나 된 둘, 다시 둘로 돌아서렵니까?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 서로가 우산이 되어 줄 테니까/
서로가 따뜻함이 될 테이니까/ 이제 두 사람은 외롭지 않으리/
서로가 동행이 될 터이니까/ 두 사람은 비록 두 개의 몸이지만/
이제 이들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그대들의 집속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래오래 행복하여라
구독하고 있는 신문에서 읽은 인디언들의 결혼에 관한 시이다. 이혼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요즘 세태에 견줘보면 너무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현직시절은 물론 퇴임 후에도 함께 근무하던 학교 동료들의 결혼 주례 요청이 있어 주례를 선 사례가 있다. 필자의 주례 단골 메뉴는 두 사람이 서로 좋아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어떤 고난과 불행이 닥치더라도 초심을 잃지 말고 죽는 날까지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당부하였다. 그러나 부부란 촌수가 없는 매우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흡사 놓치면 깨지는 사기그릇처럼 매우 조심스런 관계라는 사실을 필자 자신도 삼십여 년이 넘는 부부생활을 통해서 깨달은 장본인이다.
개성과 성장배경이 다른 두 선남선녀가 만나서 죽는 날까지 웃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인간이란 본래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 잘 하는 것이 있으면 반대로 못하는 것이 있고, 또 한 쪽이 차면 한 쪽은 비어 있게 마련이다. 흔히 부부를 영어로는 ‘커플’이라고 한다. ‘커플’이라는 용어는 ‘한 쌍’이라는 뜻도 지녔지만 ‘협력하다’라는 동사의 뜻도 함축하고 있다. 즉 부부란 서로 부족한 면을 채워가면서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부부사이는 무촌이라 하고 일심동체(一心同體)라 하지 않던가! 그런데 이처럼 가깝고 친밀한 관계도 어느 날 갑자기 틀어져 연(緣)을 끊으면 멀고도 먼 남남으로 돌아선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그의 인생론에서 ‘행복이란 현재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선(善)을 베푸는 것’이라고 설파하였다. 즉 행복의 요체는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 때 장안의 화제로 회자되었던 법륜스님도 주례사에서 서로 좋아서 결혼해 놓고 결국엔 갈라서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덕 보자는 심보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손해 볼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이 아내는 남편에게 덕 보고자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덕 보겠다는 마음만으로 결혼해서 살다보면 갈등이 잉태하고 결국은 싸우게 되고 싸움이 지속되다보면 끝내는 이혼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미 정답은 나와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부부간에 서로 덕 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내가 아내에게 또 남편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내가 그래도 저 사람과 살면서 덕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덕 ‘보겠다’는 생각 대신에 덕 ‘베풀겠다’ 는 생각으로 살아야 정말 금슬 좋은 부부관계가 유지되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이다.
특히 자녀가 있는 부부는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 또 하나 있다.
가정은 가족구성원들이 행복을 공유하는 보금자리이자 국가발전의 초석이다. 부부가 연을 끊는다는 것은 행복의 보금자리인 가정을 해체함을 뜻한다. 따라서 자녀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불행의 상처를 물러주는 것이다. 요즘도 매주 주말 저녁에 방영되는 'KBS는 사랑을 싣고’ 라는 프로에서 ‘용서의 시간’ 은 부부간에 갈등을 빚는 부부들이 꼭 한 번만이라도 시청하기를 당부한다. 이혼으로 인한 가정해체로 어린 나이에 밝고 맑게 성장해야 할 자녀들의 가슴에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부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가정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필연적인 의무와 책무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성급하게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적어도 세 번 이상 심사숙고한 연후에 행동에 옮기라는 삼사이후행(三思而後行)이라는 경구(警句)가 있다. 이 세상에 최고선(最高善)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시작하기보다 유지하기가 더 힘든 것이 결혼생활이며 부부관계다. 거친 인생행로를 가다보면 즐겁고 기쁜 날보다 어렵고 힘들고 짜증나고 고통스런 날이 더 많다. 이럴 때, 초심을 잃지 말고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에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와 인내심이 절대 필요하다. 때로는 ‘같이’ 때로는 ‘따로’의 위치를 서로 인정하면서 참고 견디면서 살다보면 부부의 정도 생기게 마련이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 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부부가 동고동락하면서 모든 것은 변하고 바뀌어도 오직 하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녕 부부간의 ‘사랑’과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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