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 잠이 줄어든다"는 말이 그냥 스쳐가는 말이 아님을 뼈가 시리도록 체험한다.
창가에 설치된 방충망이 흔들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벽시계를 보니 시침은 새벽 3시를 가르키고 있다. 잠옷 바람에 아파트 출입문을 열고 신문을 집어들었다.
'태풍 볼라벤, 오전이 고비'라는 큼직한 활자와 더불어 산더미 같은 파도를 헤치며 안전지역으로 대피하는 중국어선 모습이 볼라벤의 위력을 한껏 과시한다. 늘 하던 버릇처럼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요즘 들어 용변보기가 힘들어 족히 한 시간은 양변기에 앉아 있어야 할 것 같다. 세 끼 식사 때마다 한두 잔씩 하던 반주를 치아 통증 때문에 하지 못하니 변비가 더 심해진 것 같다.
올 해 내 나이 육십하고 아홉이다. "아홉(9) 수는 좋지 않다"는 어머님의 말씀을 100%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꺼림칙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처럼 우연치고는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은 척추고장으로 입원하기 전, 치아 하나를 뽑고 인플란트를 하기 위해 인공뼈를 심는 시술을 받았다. 시술 후.곧바로 Y 정형외과에 입원하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이랄까 약물주사 시술 효과가 있어 보름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라고 이번에는 퇴원한 지 불과 일주일도 안 되어 오른쪽 아래 치아가 또 속을 썩인다. 어차피 임플란트 시술로 치과에 방문하던 터에 통증이 있는 치아의 잇몸치료를 받았다. 처방을 받은 3일치 진통 완화제를 먹으면 쾌차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오늘은 좀 나아지겠지" 하면서 참고 견딘 게 무려 일주일이다. 통증이 덜하기는 고사하고 찬 것이 닿으면 시린 증세까지 느껴진다. 아무래도 근본적인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치과를 다시 찾았다.
"원장님 통증이 심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치과의는 먼저 "이를 뽑자"는 말은 잘 안 하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어르신 치아는 잇몸상태가 워낙 좋지 못해서 발치 외에는 특별 치료방법이…." 말끝을 흐린다. 그럼 처음부터 발치치료를 할 것이지, 그동안 잇몸치료만 해왔는지 은근히 부아가 솟는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했던가. 원장 입장에서는 목돈이 들어가는 임플란트보다는 의료수가가 적게 드는 잇몸 치료를 우선 시도해 보려고 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동안 본의 아니게 고통을 참고 견뎌야 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정말 화가 치민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울분을 토해 보아야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공급자인 의사와 수요자인 환자 간 감정만 상할 뿐, 득될 게 없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잘 알겠습니다. 아프지 않게 뽑아 주세요."라고 말한다. "치아를 뽑는다고 생각하면 서운하시겠지만 생각 잘 하셨습니다. 일단 뽑으시고 여유가 생기시면 그 때 해넣으셔도 됩니다." 의사는 자상한 말로 위로한다. 결국 나는 한 달 사이에 두 개의 치아를 뽑았다. 일단은 고통스럽던 치아를 제거하니 속이 후련하다.
"나이를 먹으면 병원을 달고 산다"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제 8월도 끝자락이다. 앞으로 임진년도 넉 달 남았다. 백두대간에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아홉(9)수 임진 년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