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발행하는 공무연금지 2014. 9월호에 제 글이 게재되었기에 부평시니어기자 여러분과 지인들에게 소개합니다. ***크리스탈/김청규기자***
이웃사촌
예년에 볼 수 없었던 마른장마로 올 여름은 유난히 고통스러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가을을 알리는 입추가 지나자 무더위 기승도 한 풀 껶였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안식구는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 곰배령에 바람 쐬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습니다. 안식구가 없는 집은 산 중 절집처럼 적막합니다.
오늘은 때마침 몇몇 고교 동기들과 텃밭에서 돼지고기 삼겹살 파티를 하기로 약속 한 날입니다. 돼지고기와 술은 동기들이 준비한다니 나는 양념과 반찬 그리고 취사용구만 챙기면 됩니다. 김치 냉장고를 열어보니 양념장과 반찬을 담은 플라스틱 용기가 눈에 띕니다. 베란다 다용도실 문을 열고 야외용 캠핑용품을 몽땅 끄집어냈습니다. 슈퍼에서 일회용 가스 2개, 라면 5개, 나무젓가락과 종이컵 10개를 구입해 박스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이제 할 일이라고는 딱 하나, 앞 베란다에 펼쳐있는 고추를 통풍이 잘되는 야외에 널어놓는 일입니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켜고 기상청 ‘앱’ 창을 열어 보니 '오전 · 오후 구름 많음’ 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고추를 깔판 채 접어 아파트 실외 잔디밭 위에 펼쳐 놓았습니다. 그리고 11시경 친구 차에 캠핑용품을 담은 박스를 싣고 서운동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텃밭을 가꾼 지 어언 5년,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 고향을 떠나 지금껏 도시에서만 생활한 나는 퇴직할 때까지 호미 한 번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내가 요즘, 텃밭 가꾸기에 푹 빠졌습니다. 재테크 개념으로 보면 텃밭 가꾸기는 완전 손해보는 장사입니다. 하지만 뒤늦게 얻는 것도 있습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과 작물 가꾸기가 어찌도 이리 흡사한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신기합니다. 세상에서 땅처럼 정직한 것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땀 흘려 애쓴 것만큼 땅은 보상하니 말입니다.
농사 일 중 가장 힘든 작물 가꾸기가 ‘고추’ 가 아닐까요. 유기농, 유기농,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고추는 농약 없이는 가꾸기 힘든 작물입니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여름 장마가 지나면 예외 없이 탄저병 때문에 속이 탑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아예 풋고추나 따 먹을 요량으로 예년의 절반만 심었습니다. 그런데 올 해는 이상하게도 농약 한 번 뿌려주지 않았는데 병든 고추가 별로 없이 붉게 물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 번에 걸쳐 땄습니다. 텃밭에서 돼지 삼겹살에 소주를 달게 마시는데 뜬금없이 빗방울이 머리에 떨어집니다.
큰 일 입니다. 뛰어 가봤자 물고추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발을 동동 구르는 내 모습에 친구가 안쓰럽던지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한테라도 부탁해보랍니다. 아침나절에 상가 슈퍼에 다녀오면서 정겹게 인사를 나눴던 아파트 상가 소재 부동산소개소에 전화를 했습니다. 마침 안 주인이 전화를 받습니다.
“아침에 인사드린 106동 2003호 사는 사람입니다.”
“웬일이세요? 전화를 다 주시고...”
“죄송합니다만. 제가 고추를 널어놓고 지금 텃밭에 와 있는데, 고추 좀 거둬주셨으면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고추가 어디 있나요”
“106동 앞 헬스 시설 앞에 널어놓았습니다.”
“알겠습니다”
텃밭에서의 동기 모임을 서둘러 정리하고 귀가하니 출입문 앞에 깔판 채 거둬놓은 고추가 눈에 띕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며칠 전 따다놓은 늙은 호박 중 가장 큰 호박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상가 부동산중개소로 향했습니다. ‘먼데 사는 피붙이가 이웃사촌만 못하다’는 속담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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