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乙未)년 끝자락에서 ...
2015, 올 한해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을미년 첫 날, 제야의 종이 울리던 그 순간 현장 중계를 하던 아나운서가 ‘올해는 모처럼 맞이하는 청양(靑羊)의 해’ 라고 덕담을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새 해를 맞이할 때마다 올해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설레지만 세모(歲暮)가 되면 아쉬움과 더불어 회한(悔恨)만 남는 것이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금빛평생교육봉사단’ 후반기 연수회 겸 평가회가 지난 11월 30일(월) 북구도서관 다목적실에서 있었습니다. 충남대 의과대학 김종성 교수님으로부터 ‘건강한 삶’이란 좋은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사가 저술한 ‘의사가 만난 퇴계’ 라는 책까지 받았습니다. ‘인간(human)이라는 어원은 흙을 뜻하는 라틴어 휴므스(humus)이며, 언젠가는 한줌의 흙과 무기질로 돌아갈 허무하기 짝이 없는 물질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많은 갈등을 느끼며, 아등바등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가?’ 는 글을 접하고 나 자신도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근래 부쩍 아침밥 수저 놓기가 무섭게 이른 봄에 잠시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춘곤증처럼 몸이 나른하고 눈이 자꾸 감깁니다. 이런 날은 일찍 감치 자전거를 끌고 서운동 텃밭으로 나갑니다. 희안하게도 흙냄새를 맡으면 증세가 싹 가십니다. 그러나 동절기인 요즘은 텃밭에 가도 딱히 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평의 아이콘인 굴포천 둘레나 부천 상동호수공원, 때로는 경인아라 뱃길까지 자전거로 다녀오는 것이 요즘 하루 일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초 (12월 8일) 하루 동안에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날도 역시 졸림증이 나타나 밥 수갈 놓기가 무섭게 몇 가지 소지품을 어깨걸이 가방에 챙겨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습니다. ‘자연과 함께 걷고 싶은 하천’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붙은 굴포천을 따라 삼산 유수지 체육공원을 거쳐 상동호수공원까지 다녀올 생각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상체가 숙어져 어깨에 맨 가방이 앞으로 자꾸 흘러내립니다. 부천영상단지 아인스월드 근처에서 어깨에 걸쳤던 가방을 자전거 핸들에 붙잡아 맸습니다. 부천 상동호수공원을 신나게 달렸습니다. 헌팅캡(모자)을 쓴 사람이 눈에 띄었는데, 무척 멋져 보였습니다.
겨울철 추운 날씨에는 반드시 모자를 써야합니다. 모자만 써도 섭씨 2도씨 내외의 보온이 된다는 글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창이 긴 모자는 있지만 방금 본 헌팅캡 모자는 없습니다. 상동호수공원에서 집 반대 방향인 부천 상동 중심가로 달렸습니다. 쇼핑몰 ‘세이븐 존’에 자전거를 세워놓을 때까지 가방이 없어진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신분증인 주민등록증을 비롯하여 신용카드, 친인척 및 지인들의 연락처와 주요 정보가 들어있는 스마트-폰 등 소중한 물건들이 눈 깜박할 사이에 분실된 것을 확인하는 순간 눈앞이 캄캄하고 온 몸의 기가 쭉 빠져나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어 지금까지 온 길을 되짚어 가면서 혹시나 떨어진 가방이 보이나 두리번거렸지만 허사였습니다.
물건을 잃게 되면 별 별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습득한 사람보다 물건을 잃은 사람이 죄가 더 많다’ 고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이제는 빨리 분실신고를 하여 2차 피해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페달을 밟아 귀가하였습니다. 안식구 스마트-폰으로 신용카드, 스마트-폰 분실신고를 하고 마지막으로 신분증 분실신고를 하였습니다. 실은 몇 해 전에도 텃밭에서 일하고 늦게 귀가하다가 지갑을 흘린 적이 있어 신용카드와 신분증을 새로 발급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소시(小時)적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퇴임 후 벌써 두 번 째 입니다. 안식구 보기가 민망하고 가슴속에서는 염불이 치솟아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누웠습니다. 서 너 시간 쯤 시간이 흘렀을까 전화벨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방안이 이미 어두워 불을 켜고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이봐 김선상님, 가방은 어디다 떨구고 다니나!” 고교 동기생인 오 회장 목소리였습니다. “아니, 가방을 잃어버린 것을 어떻게 알았어!” “긴 말 말고 원미경찰서 야간 당직실에 빨리 가보게나, 당신 가방 누가 주워서 보관 중이래!” “알았어, 고마워!”
‘나만 잘되면 그만’ 이라는 개인 또는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한 작금의 세태에 착(善)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맙고 정녕 기뻤습니다. 이제 다가오는 새해 병신(丙申)년부터는 나도 공자님의 말씀처럼 ‘하늘과 사람 원망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고 이웃을 배려하며 또 배울 것(不怨天 不尤人, 行之, 如之, 習之)을 다짐해 봅니다. 다시 한 번 가방을 찾아 준 미담 주인공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끝) 2015. 12. 14. ***크리스탈/김청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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