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답사

[스크랩] 경기 광명시 영회원(永懷園) 답사 소회

길전 2017. 1. 21. 00:08

경기 광명시 영회원(永懷園)답사

인조에게 사약을 받은 소현세자의 빈(嬪) 강씨가 잠든 능원


일년 24절기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 날 아침 창밖은 온통 은세상입니다. 중부지방에 모처럼 밤사이 큰 눈이 내렸습니다. 인천교육삼락회원들의 열 번째 고적답사를 하는 날이라 아침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삼산동 집을 나와 지하철 7호선 굴포역까지 걸었습니다. 답사장소는 필자가 태어난 고향마을 (경기 시흥시 과림동) 건너편인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입니다. 광명사거리역 7번 출구를 나와 서울 목동과 광명 노오사동 구간을 다니는 6637번 버스를 타고 1차 집결지인 온신초등학교 앞에서 하차하였습니다. 학교 운동장은 동계휴가 중이라 그런지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은세계 그대로였습니다.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눈덮인 온신초등학교 교정 모습


12시경 8명의 회원이 2대의 승용차에 분승하여 2Km쯤 되는 눈 덮힌 산길을 조심스럽게 달려 영회원 입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영회원(永懷園사적 제357호)은 조선 16대 인조의 원자인 소현세자의 부인 민희빈 강(姜)씨가 잠든 능원입니다. 민희빈은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의 딸로 강감찬의 19대 손녀이며, 인조 5년에 세자빈이 되었답니다. 민희빈 강씨는 병자호란으로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끌려가서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강씨는 볼모생활을 하는동안 소현세자를 도와 조선 백성의 구제 및 양국간의 관계조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렸다고 합니다. 귀국한 소현세자가 북벌파와 불목(不睦)하던 중 2개월만에 갑자기 죽자 민희빈은 인조를 정성으로 받들었고 인조도 몹시 아꼈다고 합니다.       



광명시 영희원 앞의 440년 느티나무 앞에서(가운데가 박춘식동아리회장)  


그러나 평소 민희빈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인조의 후궁 조씨와 북벌파에서  민희빈 강씨가 소현세자를 독살하고 또 조정을 저주한다고 무고(誣告)하여  강빈은 후원에 유치되었다가 이듬해 1646년에 사약을 받았습니다.

 또한 강씨속에서 난 세 아들 마저 후환이 두려운 인조는 제주도로 귀양보내 그 중 두 아들은 병사하였다고 합니다. 강씨는 죽음과 함께 폐서인이 되어 서민으로 묻혀오다가 72년 후인 숙종 44년에 세자빈 강씨의 결백함이 밝혀져 민희빈으로 복위되어 무덤도 민희묘(愍懷墓)라 불리다가 고종7년(1870)에  영희원(永懷園)으로 개칭되었다고 합니다. 필자가 자주 인용하는 사자성어, 사필귀정(事必歸正)이지요   


흰눈에 덮인 민희빈 강씨 묘원 영희원 모습


무덤 앞에는 상석(床石) 장면등(長明燈) 문석인(文石人) 석수(石獸) 등이 있으나 비석 정자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관리해 오던 영회원은 금년 새해부터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에서 관리한다고 합니다.   '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 뿌리인 선조들의 삶의 꿰적을 인천교육삼락회 고적답사부동아리활동을 통해서 하나하나 제대로 살펴보는 곳이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역사학자 못지않은 식견으로 해설을 해주시는 박춘식동아리회장님이 늘 고맙습니다. 눈길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크리스탈***    

출처 : 인천교육삼락회
글쓴이 : 크리스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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