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답사

[스크랩] 안산 별망성(지)別望城(址) 답사

길전 2017. 3. 25. 00:33

안산 別望城址/경기도 기념물 제73호

인천교육삼락회 제12회 고적답사


오늘(2017.3.24) 인천교육삼락회 고적 답사부는 열두 번째 고적답사로 경기도 기념물 제 73호인 安山 別望城(趾)을 답사하였다. 집(삼산동)에서 인천지하철 1호선 갈산역까지는 자전거로 그리고 고려조 7대어향으로 인천이씨의 시원인 원인재에서 다시 수인선으로 그리고 오이도에서 수도권 4호선으로 환승하여 1차 모임장소인 고잔역에서 하차하였다.

그런데 하차 직전역인 초지역을 지나면서 '왜 초지(草芝)라는 지명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것은  강화에 위치한 초지진이 본래는 고려조 말 왜구의 노력질을 막기위하여 서해안 남양만에  설치한 해안군사기지(별망성)를 효종7년(1796) 강화도로 옮기면서  이 곳을 1초지라고 하였고, 강화도의 것은 2초지라 불렀다는 사실을 오늘 비로서 알게되었다.   

 

남양만은 내륙으로 깊숙이 만입된 수로이기때문에 교통·국방의 요충지였고 조선시대에도 어업이 번성했던 지역이다. 이곳은 초지진의 별망군들이 망을 보던 망루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 별망이었으며 포구의 명칭역시 별망포구였다. 그것을 1977년 경기도기념물 (제73호)로 지정할 때 마을 이름을 그대로 따라 별망성이라 명명한 것이다.


밖에도 현재의 영종진 본래는 남양도호부 관내(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엇던 만호진이 효종 4년(1653)에 인천의 자연도 앞 태평암으로 이전되면서 지명이 자연도(紫燕島)에서 영종도로 바뀐 사실 그리고 안산지역에 전해오는 소능(昭陵: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묘) 의 가슴 아픈 유래에 대해 소상히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열두 번에 걸친 인천교육삼락회 고적답사활동을 통하여 우리 문화재에 대한 새로운 안목과  식견을 갖게 도움을 준 박춘식 고적답사 동아리회장과 더불어 동행한 8명 회원들(김종진, 김청규,박용호, 조의행, 한병관, 한병철, 최규선, 이평기)께 감사를 표한다. 제13회 고적답사는 4월 26일(수) 서울에 있는 사직단과 종묘를 답사할 예정이다. ***크리스탈***  








출처 : 인천교육삼락회
글쓴이 : 크리스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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