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동탄 이야기

새 보금자리, 화성시 동탄에서의 첫 나드리

길전 2020. 4. 16. 21:42

새 보금자리, 화성시 동탄에서의 첫 나드리

용주사 & 융.건릉을 찾아서...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로  이주 한 지, 오늘로서 꼭 보름(15일)이 된다.  그동안 새 집 정리하느라 피로가 무척이나 누적되었다. 피로를 풀기 오전 늦으막하게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동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용주사(龍珠寺)와 융릉(隆陵)·건릉(健陵)이다.


 용주사는 행정구역상으로 태안읍 송산리이지만  융·건릉이 있는 안녕동 뒤쪽에 잇는 화산 기슭이다.  이곳에는 본디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염거화상이 창건한 길양사가 있었다고 한다. 고려 광종 21년(970)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수륙제를 개설하는 등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가 되었다.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  낙성식 날 밤 정조가 꿈을 꾸니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龍珠寺) 라 했다고 한다. 용주사를 중창할 때 정조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렸다고 한다. 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걸작이고  정조대왕이 심었다는 대웅전 앞 회양목은 수령이 200여년이 넘은 천연기념물 제264호이다. 범종각의 동종도 상원사 동종, 국립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국보 제120호이다. 



용주사에서  두 정거장 거리에 위치한 융릉(隆陵)은 추존 장조의황제와 헌경황후의 능이다. 또한  건릉(健陵)은 장조(사도세자)의 둘째 아들이면서 할아버지 영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오른 조선 제22대 정조선황제와

효의선황후의 능이다.





 *융릉 연혁

 -1789년(정조13) 양주 배봉산(지금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던 영우원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현릉원이라

  고쳐 부름

 -1816년(순조16)현경의황후(혜경국 홍씨) 합장

 -1899년(광무3)장종으로 추존,융릉으로  높임. 장조의황제로 추존


*건릉 연혁

 -1800년(정24) 정조 안장, 현릉원 동쪽 두번째 언덕에 조성(초장)

 -1821년(순조21) 현릉원 서쪽 산줄기 지금의 자리로 천장, 효의선황후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