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 돌아가는 세태(世態0가 아무래도 느낌이 수상하다. 예년에 볼 수 없던 긴 장마에다 수시로 한반도를 오르내리면서 쏟아붓는 엄청난 폭우로 전국 20여 곳에 달히는 선한 국민들의 삶의 터전을 쑥대밭을 만들고 물러갔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그동안 잠잠하던 '코로나 19' 가 기나 긴 시간, 일제 압제에서 벗어난 날을 축하하는 광복 75주년 기념식을 전후하여 다시 기승을 부려 보통 사람들의 새가슴만 애궂게 태운다.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안다' 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사자성어는 《중용》에 실린 글이다. 최근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여권 실세들이 이 사자성어를 조금이라도 음미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심란한 마음, 조금이라도 해소하고픈 마음에 동탄복합문화센터를 또 찾았다. 1주일 전에 빌려 온 책 3권을 반납하고 새 책 2권을 또 빌렸다.
지난해 12월 노작 홍사용문학관에서 발간한 《문학으로 걷는 화성》은 경기 화성에 뿌리를 둔 91 文人들의 작품을 수록한 화성의 역사와 지리. 그리고 사람사는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당연히 백미(白眉)는 노작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이다. 홍사용(1900~1947)은 경기 용인군 기흥에서 태어났다. 유·소년기를 벗어난 그는 화성 동탄면 석우리로 이주하여 사숙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17세에 서울 휘문의숙에 입학한다.
수학 중 1919년 3.1운동에 참여 옥고를 치르고 귀향한 그는 낭만주의 문예종합 동인지인〈백조〉를 간행하여 「나는 왕이로서이다」,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 「봄은 가더이다」 등의 시를 발표한다. 하지만 안타갑게도 그는 〈백조〉에 많은 관심을 쏟았음에도 한 권의 시집도 내지 못한 시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기회에 책 서두에 실린 그의 대표작 「나는 왕이로서이다」을 소개한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
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 十王殿에서도 쫓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
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
더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
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 하는 그 소리였지
요만은, 그것은 '으아' 하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니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니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날에 동내洞內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데없
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 오고 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는 아무 대답도 없이 속 아픈 눈물만 흘리
셨답니다.
발가숭이 어ㅣㄴ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 발버둥질 치며 '으아
-'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 버리었소
이다.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빰에 떨어질 때면,왕
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열 한 살 먹던 해 정월 열나흘 날 맙. 맨잿더미 그림자를 보려 갔을
때인데요, 명命이나 긴가 짧은가 보려고,
왕의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럽게 놀리더이다. 모가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
요
나무꾼의 산타령을 따라가다가 건넛산 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꾼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달우물로 가자면 지름길로 들어서면은 찔레나무 가시덤
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그래 철없는 어린 왕 나는동무라 하고 쫓아가다가 돌부리에 걸리
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로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엑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 아 그 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은 소리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우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烽火둑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하
며 감중련坎中連 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 장군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구름은 얼마나 많
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설움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끝)
***크리스탈/명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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