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思

신문에서 발견한 詩 '기대지 않고'

길전 2021. 1. 5. 06:01

나는 잠자리에서 눈을 뜨기가 무섭게 아파트 1층 우편함에 있는 신문부터 찾는다. SNS가 일반화된 요즘, 종이 신문에 매달리는 나를보고 아마 웃는 친구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하나' 만 알고 '둘'은 모르는 아나로그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긴 새 소식을 접하려면 신문 말고도 라디오나 TV 또는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얼마든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국.내외 뉴스를 접할 수 있다. 그럼 왜 나는 종이신문에 매달릴까! 그것은 신문을 통해 칼럼인들과 소통 할 수 있기때문이다. 비록 이들과 간접 만남이긴 하지만 즉 그들(저명인사)의 글(칼럼)을 통해 나는 많은 지식과 소양을 얻는다. 일예로 김동길 김형석 교수 같은 분들로부터 나는 많은 교훈과 감화를 받는다. '일류 자녀를 키우기 위한 10계명 중 하나로 자녀를 신문과 가까이 하게 하라'는 서울대 모 교수의 글도 있지 않던가!!

통탄 와서 바꿔서 구독 중인 C일보 새해 辛丑년 1월 4일자, A30면 오피니언란 하단에 '기대지 않고' 라는 詩에 시선이 꽃친다. 詩 옆에는 시인이자 이미출판 대표의 해설 글이 실려있다.

 

"내 삶과 동떨어진 학문이면 사상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기대지 않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는 엄청난 독서를 했을 게다. 이런 저런 사상과 학문을 섭렵했던 者만이 그처럼 쉽게 버릴 수 있다" - 중략- 내 나라 안방을 점령한 무슨 무슨 클래스에 열광하는, 무슨 무슨 논리에 영혼을 바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싶은 시, 유튜브의 시대, 내 눈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다리로 서있지 못하고 부화뇌동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하 생략-

 

어쩌면 요즘 우리 현 실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했는지 너무나 감동적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귀바퀴가 달아오른다. 나도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는 생각 때문일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2시간 이상 종이신문 그것도 오피니언 들이 투고한 글을 돋보기 안경을 통해 자세히 들려다 본다. ***크리스탈***

 

◀기대지 않고▶

-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

 

더 이상

기성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기성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기성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그 어떤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면서

마음속 깊이 배운 건 그 정도

자신의 눈과 귀

자신의 두 다리로만 서 있으면서

그 어떤 불편함이 있으랴

기댄다면

그건

의자 등받이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