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독서)

‘어느 판사의 죽음’ 글을 접하고서.../2021.2.19.(금)

길전 2021. 2. 19. 13:58

우리나라 국민 중, 바다 건너 있는 일본을 반길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강제 징용으로 일본에 끌러갔다가 8.15광복으로 어렵사리 생환한 부친을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린다. 자칫 아버지 없는 유복자라는 소릴 들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기리야마 본진 대표이자 전 주일대사 1등 서기관이었던 신상목오피니언의 어느 판사의 죽음이라는 글이 눈에 띈다. 34세 이른 나이에 生을 마감한 일본 야마구치 요시타나 판사에 대한 글이다. 지체 높은 판사가 餓死했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이 대동아전쟁에서 패전 직 후(1947.11) 일본 신문 기사 이야기다. 당시 일본은 식량관리법에 따라 쌀 · 밀가루 등 주요 식료품을 배급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겨우 연명할 정도의 식량 배급에 시중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고, 정부의 단속을 피해 암시장이 독버섯처럼 생겨났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와 암시장 거래로 식량의 정상적인 유통이 더욱 왜곡되자 정부는 엄정한 불법 유통단속을 엄포했지만 , 암시장은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야마구치는 1946년부터 도쿄지방재판소에서 경제사범을 담당하고 있었다. 극심한 혼란 속에서 식량관리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들이 넘쳐났고, 야마구치는 그들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해야만 했다. 부인에 따르면 야마구치는 그해 10월 배급 이외의 어떠한 음식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타인에게 암시장 이용의 죄를 물어야 하는 자신이 암시장 유통 식품을 소비하는 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며 자신은 판사로서 부끄럼 없는 재판을 하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배급으로만 끼니를 때우던 야마구치는 이듬해 8월 영양실조로 쓰러졌고, 요양 중 폐질환이 악화되어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야마구치 판사의 죽음은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다. 융통성 없는 고집이 비인간적이라며 혀를 차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그러나 타인을 심판하는 재판관으로서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거짓과 위선을 경계하고자 한 그의 고결한 정신은 일본 사회의 깊은 인상을 남겼다.

 

 

따라서 나는 틈만 있으면 우리나라를 괴롭혀 온 일본 정부는 싫지만, 어려서부터 타인을 배려하는 친절· 청결 및 생활 기본 준칙를 철저히 교육시키고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밴 일본인들 국민성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게 畏敬心이 절로 솟는다.

 

이 글을 읽는 동안 현직시절 학교장과 교단교사들의 교량적 역할을 하던 때의 모습이 뜬금없이 떠오른다. 두 아이가 대학 입시를 1년여 앞둔 시기였다. 아이들 과외교습 시키는 것이 어떠냐?” 는 안식구 제안에 나는 一言之下안 된다고 했다. 당시 서울 4대문 안에 있는 대학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지금 두 아이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만족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사회생활 하고 있다.

 

근자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헌법정신과 법치에 따라 정의롭게 판결하는 판사들과 검사들이 있어 아직은 몸담고 있는 이 나라가 살만한 세상이라 여긴다. 그리고 우리 후대들의 행복한 미래를 희망을 갖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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