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독서)

팔순(八旬) 친구들의 의미 있는 만남

길전 2025. 11. 30. 00:54

 

을사년 11월 마지막 주말인 어제, 학교 동기 네 명이 수원 만석공원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서 회포를 풀었다. 본래 이 모임의 시작은 K가 인천에서 ‘길이 열리는’ 동탄에 이주 하면서 생긴 모임이다. 처음에는 “3규1종(병규·항규·청규·기종)”이라 하다가 2명(희진·윤우)이 추가 참석하므로 동심회(同心會)라 명칭이 바꿨다. 

 

이날 건강이 좋지 않은 W와 또 시제 참석으로 C가 불참하는 바람에 단촐한 모임이 되었다. 팔순을 넘겨 망구(望九)을 바라보는 동기들이 만나 나누는 이야기는 어느 만남이나 대동소이하리라 생각된다. 소싯적 살아온 대화 이거나 아니면 학교 근무시절 손수 겪었던 경험담이다. 

 

오늘 나눈 대화 중, 의미있는 이야기는 학교 재학시절, 영국 ”조지 기싱(George Gissing,1857-1903)“의 영문 수필집 “A Touch Of Spring을 읽고서 결국은 노력 끝에 우리나라 최고학부인 대학교수로 정년을 마친 林교수가 아닐 수 없다. 밤을 새 영문 수필집을 일부 발췌해서 들고 온 친구 교수의 원고를 소개하고자 한다.

 

A TOUCH OF SPRING

GEORGE GISSING(1857-1903) British writer

 

내가 런던에서 보낸 초년 시절을 회상해 보니, 그 때는 계절이 나도 모르게 흘러갔고, 하늘 한번 처다 볼 겨를도 거의 없었고 , 런던의 끝없는 거리에 걸쳐 있으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6-7년 동안 풀밭 한번 바라볼 겨를도 없었고, 나무숲이 우거진 가까운 교외까지 조차도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나의 소중한 삶을 위해서 참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 그 당시 나는 얼마나 열심히 일 했던가! 그리고 스스로를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이 든 것은 한참 후였다. 지나친 과로와 나쁜 공기. 형편없는 음식, 수많은 비참한 환경 때문에 건강이 망쳐 버린 후였다. 그러자 한적한 시골이나 해변 같은 곳 또는 더 멀리 있는 다른 곳들을 가보고 싶은 미칠 듯한 욕망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가장 힘들게 고생하고, 지금 생각하면 끔찍할 만큼 고난을 겪은 그 몇 년 동안에도 사실은 나는 고통스러웠다고는 말 할 수가 없다. 내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나약한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모든 건강이 모든 것에 대처할 수 있는 증거였고 내 활력은 모든 악 조건에 대항했었다.

그러나 누구의 아무런 도움이 없어도 나에겐 무한한 희망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각조차 꿈직한 곳에서도 깊은 단잠을 자고 나면 아침마다 산뜻한 기분으로 일터에 나갔는데, 때론 아침 식사라곤 빵 한 조각에 물 한 잔 일 때도 많았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관점에 비추어 볼 때, 그 당시 내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단언 할 수가 없다(As human happiness goss. I amnot sure that I am not than Happy.)

 

내 본성은 출세를 위해서 결코 누구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호의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라서 내가 성취한 나의 위치는 나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었다. 심지어 타인의 호의를 달가워하지 않았으므로 누구의 충고도 경멸했고 내 자신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어떤 조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낯모르는사람에게 밥벌이를 구걸할 필요성에 쫒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내가 경험 중에서 굶주림이 가장 쓰라진 경험이었다. 그러나 친구나 동료에게 신세를 진다는 것이 훨씬 더 나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나는 나 자신을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한 사람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나에겐 항상 나와 이 세상이라는 두 개의 실체가 존재할 뿐이었고, 이 양자의 보통 관계는 늘 적대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는 여전히 사회질서를 구성하는 요소와는 멀고 먼 고독한 사람이 아닐는지? 한 때는 건방지게도 ᄌᆞᆼ으로 여겼던 이런 생각이 지금 생각해 보니, 재난은 아닐지 라도, 다시 한 번 살게 된다면 선택하고 싶지 않은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을 나는 책속에 갇혀서 보냈는데, 그 시간을 풀밭에서 보낼 수도 있었다. 그 소득은 같은 것일까? 마음속으로 의아하고 자신 없게 그 소득이 같지 않다고 항변하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꽃들마다 피는 모습을 알고 있고 하릇밤 사이에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새싹이 움트는 나무 가지들의 경이로움을 인식하는 즐거움의 순간들이 생각난다.

 

산사시나무의 반짝이는 눈같이 하얀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고, 앵초(primrose)가 늘 피는 언덕에서 올 해 앵초의 처음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며, 그 숲속에서 아네모네도 눈에 띄었다. 미나리아재비 꽃이 반짝이는 풀밭들, 습지 금잔화에 햇볕이 내려 쪼이는 계곡들에 내 시선이 한동안 머물렀다. 은빛 하얀 털을 달고 금가루가 묻어 있는 버들강아지를 매달고 반짝이는 버드나무를 바라본다. 이 모든 평범한 것들이 더 많은 찬미와 더 많은 경외심으로 나를 감동 시킨다. 이러한 봄의 정경들이 또 한 번 지나가 버렸다. 이제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나의 기쁨은 불안한 마음과 뒤섞이고 있다. ()

 

***크리스탈 힐링일기/202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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