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독서)

빛바랜 스승의 날 아침에…

길전 2026. 5. 15. 13:56

아침 식사를 하던 중 무심코 거실 TV 스위치를 눌렀다. 때마침 KBS에서는 스승의 날 특집 생방송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화면 속 학생들이 선생님의 가슴에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오래전 기억 하나가 잔잔하게 떠올랐다

 

 20여 년 전만 해도 스승의 날 아침이면 학교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교정 가득 번졌고, 전교 어린이회장이나 학급 대표 아이들이 수줍은 표정으로 다가와 카네이션을 달아주곤 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인사 한마디에도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어, 그날만큼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인천 철마산 기슭에 자리한 B초등학교를 끝으로 교단을 떠난 것이 2006년이니, 8월이면 어느덧 만 20년이 된다. 참으로 빠른 세월이다. 반평생이 넘는 40여 년 동안 교직에 몸담고 살았건만, 올해는 스승의 날이 다가오는 줄조차 잊고 지냈다. 아마도 현직을 떠난 지 오래된 탓도 있겠지만, 세월 속에 묻혀 가는 기억들을 떠올리며 문득 인생의 무상함마저 느끼게 된다.

 

 스승의 날의 유래를 다시 생각해 본다. 1958년 충남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병환 중이거나 은퇴한 선생님들을 찾아 위문한 데서 비롯된 은사의 날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이후 1965년부터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인 세종대왕 탄신일인 5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새내기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던 시기와 맞물려 있어, 개인적으로도 더욱 뜻 깊게 느껴진다.

 

 그러나 시대는 참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스승의 권위와 가르침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웠다면, 오늘날은 아이들의 개성과 자유, 인권이 더욱 중시되는 시대가 되었다. 시대 변화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아이들의 생각과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는 바람직한 면도 많다. 다만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부담 또한 커졌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한때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속담조차 옛이야기처럼 들린다. 감사와 존경의 의미를 담아야 할 스승의 날이 일부 교사들에게는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진다.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민원과 오해를 우려해 일부러 자리를 피하는 교사들도 있다고 하니, 교단의 현실이 예전과는 참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최근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적지 않은 교사들이 사회적 존중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으며, 일부는 이직이나 사직까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오랜 세월 교단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적지 않은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국가의 백년대계는 결국 교육에 달려 있고, 그 교육의 중심에는 교사가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건강한 교육과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며칠 전에는 학생들의 건강 증진과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던 현장체험학습이 점차 학교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안전사고와 책임 문제 때문이라고 하지만, 혹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 같은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물론 세상사 모든 일이 완벽할 수는 없다. 유명 철학자의 말처럼 세상에 최고선만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고, 때로는 부족함 속에서도 서로 이해하고 보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인지도 모른다. 스승의 날 아침 방송을 바라보며 오래전 교단의 추억을 다시 떠올려 본다.

 

 세월은 흘렀고 교육 환경도 크게 달라졌지만,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고자 애쓰는 선생님들의 마음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실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아이들을 위해 애쓰는 선생님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의 미래 또한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부디 앞으로는 교육 현장에서 교권과 학생 인권이 조화롭게 존중받고, 선생님들이 보다 안정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사회 역시 스승의 참된 의미와 교육의 소중함을 다시금 깊이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희미해져 가는 카네이션의 추억 속에서도, 스승의 참된 가치만큼은 오래도록 빛바래지 않기를 소망하며 이 글을 맺는다.()

 

**크리스탈 힐링 일기2026.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