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 어른들께 들었던 말씀들이 하나같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마음에 남는 말은 “초년고생은 사서도 한다” 혹은 “초년이 고생스러우면 말년이 편하다”는 이야기다. 세월의 굽이굽이를 지나오며 돌아보니, 그 말 속에는 삶을 오래 살아낸 이들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8·15 해방 이전에 태어났다. 처음 호적에 올랐던 이름은 일본식 이름인 ‘요시다(吉田)’였다. 그 뒤 광복의 기쁨도 잠시, 나라가 채 안정을 찾기도 전에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비극을 겪어야 했다. 그렇게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살아남아 어느덧 여든셋의 나이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 또한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과 함께 흘러왔다. 4·19 학생의거와 5·16 군사정변 등 숱한 시대의 변곡점을 지나면서, 개성에서 피난 내려온 인천교대를 졸업하고 평생을 교육 현장에 몸담았다. 당시 나라의 중요한 과제였던 인성교육과 창의성교육을 위해 42년 넘게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정년퇴임한 지도 어언 2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슬하에 둔 두 자녀 가운데 첫째 딸은 우리 부부의 뒤를 이어 교직의 길을 걷고 있다. 오늘은 그 딸이 낳은 둘째 아들, 곧 나에게는 열두 번째 생일을 맞는 외손자의 생일날이었다. 지금도 십여 년 전의 기억이 또렷하다. 딸이 첫아이인 외손녀를 낳고 2년쯤 지났을 무렵,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동탄의 산후조리원을 찾았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잠시 들여다본 뒤, 어린 외손녀의 손을 잡고 인근의 파리바게뜨 에 들러 빵을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속으로 ‘과연 내가 이 손자들이 초등학교 다니는 모습까지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세월은 참 빠르다. 어느새 큰손녀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오늘 생일을 맞은 둘째 녀석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딸의 이야기를 들으니, 녀석은 사춘기가 일찍 찾아왔는지 요즘은 부모 말도 예전처럼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제 생일 저녁을 할아버지·할머니가 사는 곳 가까운 음식점에서 함께 먹고 싶다고 했다니, 그 마음이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모른다.
식사를 함께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은 마치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어느새 우리 곁을 지나간다는 것을 말이다. 젊은 시절에는 앞만 보고 살아오느라 세월의 흐름을 잘 느끼지 못했는데, 손자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비로소 시간의 속도를 실감하게 된다.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두 손자가 앞으로도 건강하게 성장하여 훗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우리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이 긴 세월을 살아온 한 노 교육자의 소박한 바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오늘처럼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웃으며 식사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결국 가족의 정과 따뜻한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느끼게 되는 하루였다..
**크리스탈 힐링 일기 / 2026. 05.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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